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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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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부적응? 독자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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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등록일
2009-03-27 15:31:27
조회수
4640
'정의로운 기사? 이슈를 만드는 기사?'

어떤 기사가 좋은 기사인가? 예비 언론인에게 '바이블'인 <저널리즘의 기본요소(The elements of journalism)>에 따르면, 좋은 기사는 "그 기사를 읽은 독자가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게" 한다. 독자가 가질만한 궁금증을 다 풀어주는 기사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으며,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의 의견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고대신문에 실린 <학내 부적응 학생 구제책은 없나>기사는 좋은 기사가 되기엔 부족하다.

일단 이 기사는 '학내 부적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학내 부적응'을 정의하지 않은 채 시작됐다. 물론 최근 한 학우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현실을 진단해본 기획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정한 '학내 부적응자' 즉,'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은 너무나도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범위이다. 그러다보니 기자 스스로도 '학내 부적응'과 '학사경고자'의 의미를 혼용하여 사용해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그런데 단순히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들을 모두 ‘학내 부적응’자라고 볼 수 있는가? 물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성적도 낮을 것임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사실(fact)로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섵불리 말하기 어렵다. 기자의 제1 덕목은 사실 확인이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그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도 꼭 확인하고 증명해야 한다. 최근 신동아의 '가짜 미네르바 인터뷰 사건'이 좋은 예이다.

또한, 이 문제는 소위 ‘학내 부적응자’를 돕는 프로그램이 없거나 부실함을 고발하는 기사인지, 아니면 학교측의 변명을 대신 전해주는 기사인지 명확하지 않다. 기사에 따르면 우리 학교에는 다른 학교보다 학내에 심리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는 프로그램이 부실하다. 또한 아무리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학사경고 받은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주지 못한다. 이러한 학내 부조리를 짚어낸 것은 훌륭하다. 그런데 이 기사는, 그렇다면 왜 그런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 제시해줬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어쩔 수 없다는 교직원의 변명만이 담겨있다. 그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조차도 설명돼 있지 않다.

이 기사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면 적어도 상담 전문가나 학교 교수님, 아니면 어려움을 겪는 학사경고생 혹은 학내부적응자의 직접인터뷰를 인용해 현재 문제와 해결책을 생생하게 전달해줬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리 저리 흔들리며 모호한 대상에 대해 답답한 비판만을 하고 있다.

이 기사를 다 읽은 독자들은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어떤 독자들은 이 글을 읽은 후 학교 행정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어떤 독자들은 명확하게 기사를 쓰지 않은 고대신문을 덜 신뢰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대신문은 고대의 소식지인 동시에 이 나라 대학생 지성의 기표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만큼 기자들은 책임감을 갖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말끔히 풀어주는 명쾌한 기사들을 많이 써주길 바란다.

김유림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05)
작성일:2009-03-27 15:31:27 163.152.98.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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