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서 ‘선생님’이 된 지 30년이 됐다. 고대 물 먹어 본 적 없던 나를 위해 원로 교수님께서 정성껏 신임교수 오리엔테이션을 해 주셨다. 고대만의 전통이라며 아름다운 고대어(高大語)를 알려주셨다. ‘대학’ 대신 ‘학교’라 했으며, ‘동문, 동창’ 같이 그저 그런 표현 대신 ‘교우’라는 정감 어린 말을 썼다. 특히 ‘교수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배웠다. 물론 상식 있고 뼈대 있는 사람은 ‘고연전’이란 우아한 말을 써야 한다는 건 고대에 오기 전부터 진즉 알고 있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고대어는 용어만 다른 게 아
어떤 소리는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는다. 간신히 들려도 잔향은 오래 머물지 않고, 사람들은 곧 잊어버린다. 2010년 어느 날,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작업 중이던 20대 청년 하나가 용광로 쇳물 속으로 사라졌다. 펄펄 끓는 용광로 쇳물에 사람이 빠져 흔적 없이 사라지다니. 설화나 민담도 아니고 21세기 산업도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사람들은 경악했다. 누군가는 그 사건을 두고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제목의 추도시를 썼고, 시로 노래를 만들었으며, ‘공유’하며 퍼 날랐다. 시민들은 청년을 안타까워했고 진심으로 애도했다. 하
청년세대는 22대 총선에서도 공천과 공약에서 홀대받고 있다. 청년 정책은 재원 확보 방안 없이 약속되고 있고, 양당의 지역구 공천 확정자 중 2·30대는 3% 수준에 불과하다. 청년 할당제는 선거철마다 논의되지만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청년 전략지역구 선정, 비례대표 당선권 내 청년 50% 할당 등을 국민의힘 지도부에 제안했고, 한동훈 비대위장은 청년세대를 밀어주겠다며 국민 공천제도를 도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규에 청년 10% 공천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 2·30대를 고작 9명 공천했다
송민제 전문기자
새학기를 맞은 봄의 캠퍼스는 연신 들뜬 분위기다. 1면에서 응원OT를 다룬 고대신문을 통해서도 힘찬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합동응원전과 동아리박람회, 장학증서 수여 등 학내 굵직한 사안을 다뤄내며 알찬 보도면을 꾸려냈다. 그러나 보도면의 기사가 무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린캠퍼스 사업, 총학 선본 공약, 총장과의 대화에서 건의된 내용 모두 학보사로서 더 심도 있게 문제의식을 드러냈어야 했다. 정부 주도 사업을 특별한 이유 없이 일 년 앞당겨 조기 종료시킨 것은 퍽 충격적인 일이다. 학교가 추진하던 대다수 사업과
만년 배우로 살아오신 오현경 선생이 88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MZ세대에게는 낯선 노장의 배우일 수 있지만, 중장년층들에게는 드라마 의 종합상사 자재과 만년 과장 이장수의 향수가 짙다. 꼬장꼬장한 캐릭터인데도 부하 직원을 알뜰히 챙기는 서민적인 역할로 인기를 끌었다. 고교 시절 연극반을 거쳐 연세대학교 극회로 시작한 배우 인생은 TV 드라마, 연극, 영화에서 수많은 극중 인물을 선생의 말투와 캐릭터로 창조했다. 드라마 의 바보 연기는 코미디언 심형래의 영구 캐릭터의 원조였고, 내시 특유의 억양과 리듬
2학년 마지막 학기에 접어든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보통 참살이길에서 약속을 잡는다. 매번 가는 곳만 가게 되는 술집들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멀지만 가까운 성신여대로 눈길을 돌렸다. 성신여대 길을 지나던 중 특이하고도 우연한 계기로 ‘우토’라는 이자카야를 처음 접하게 됐다. 이자카야는 각자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을 찾아간다. 나는 대개 그 장소의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게 곳곳에 걸려 있는 조명들은 테라스에 은은한 분위기를 불어넣어 마치 감성 카페를 연상케 했다. 대학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경기 광명에서 민생토론회를 열고 ‘청년층 장학금 확대’ 등 청년 정책을 내놓았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책을 알리는 것이 사실상의 선거운동인지 혹은 국가원수로서의 정당한 행보인지에 관해 여야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민생토론회, 말 그대로 ‘민생’이다 - 임재철(공정대 통일외교22)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사소한 행동 하나가 논쟁의 불씨가 되며 선거의 당락을 좌우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국회의원 선거라는 중요한 일정을 앞둔 지금, 민생토론회를 바라보는 여야의 입장
박은준 전문기자
다음 창업팀 모집도 불투명학운위, 스타트업 서포터즈로 통합“창업 공간 지원 계속됐으면”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준공된 파이빌99(파이빌)의 용도가 변경된다. 파이빌 내 스튜디오는 16개에서 7개로 줄어들며, 남은 9개는 디자인조형학부(7개)와 스마트모빌리티학부(2개)가 이용한다. 스튜디오를 관리하던 학생운영위원회는 크림슨창업지원단 산하 스타트업 서포터즈로 통폐합된다. 크림슨창업지원단(단장=이병천 교수)은 “고려대 창업 유관부서 업무를 크림슨창업지원단으로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학운위 주관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기억하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전시 성폭력이 중단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소녀상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일본군의 반인륜적 범죄를 고발하는 의미는 하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길 바
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에 십분 공감한다. 반복된 루틴에 지쳐 뉴욕 빙햄튼 대학교에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러한 이유다. 루틴은 내 세계를 조르는 덩굴이다. 그러나 도망친 곳은 또 다른 우물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세계가 넓어졌다고 느꼈다. 미국은 나무조차도 한국과 달랐다. 미국 나무는 옆으로도 거대하게 자란다. 마치 외계 생명체를 보는 기분이다. 같은 뉴욕 주안에서도 차로 3시간씩 걸리며 이동하고, 도시마다 분위기도 매우 다르다. 발음도 달랐다. 알파벳 ‘O’를 울리게 발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해하질 못했
요즘 정치권이며 언론이며 연일 ‘출산율’ 문제로 시끄럽다. 합계출산율이 1을 하회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 역사적 고점을 찍고 2021년부터 하락 전환됐다. 인구통계의 장기적 추세를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에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반등하지 않는다면 급격한 인구절벽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에 정부는 역사상 마지막으로 70만명 이상이 태어난 1990년대 초반생에게 희망을 걸고 다양한 정책들을 내걸고 있다. 나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1990년대 초반 ‘가임기 여성’이다. 얼마 전 결혼을
고대인에게 추천할 단 한 권의 책을 고르다 보니 미궁을 헤매는 테세우스가 된 기분이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을 고른 건 이 책이 그 어떤 책보다 내 가슴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책의 서문에서 말했듯, 나도 “이 책을 읽어라”고 말하려 한다. 물론 이 책은 출간된 지 벌써 60여년이 흘렀고 책의 주된 내용인 탈식민화 역시 너무 옛이야기 같다. 많은 석학이 이 책을 해석하고 재해석해 이미 닳아버린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큰 사람일수록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지고, 갈수록 꿈을 키우며, 못난 사람일수록 애초에 허황된 꿈을 꾸다가, 시간이 갈수록 움츠러든다. 내가 부임한 2004년 졸업반이었던 한 학생은 학자의 꿈을 키웠으나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해서 꿈을 접어야만 한다고 했다. 나는 호되게 그를 꾸짖으며 꿈을 버리지 말라고 했고 머뭇거리던 학생은 이내 MIT, 영화 오펜하이머 때문에 알려진 Los Alamos National Lab 등에서 승승장구하며 지금은 해외 명문대에서 교수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결국 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서 이룬
국내외적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졌다. 극심한 불평등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야기할 뿐 아니라, 국내외 분쟁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불평등과 분쟁의 관계를 연구한 월터 샤이델(Walter Scheidel, 1966~)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인류가 이렇게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했던 방식은 대규모 전쟁, 급진적 혁명, 국가 실패, 치명적인 전염병 등의 폭력적인 사건이었다. 1900년대 초의 심각한 불평등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2500~5000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 그리고 공산 혁명 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190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7조원을 넘으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교육부가 14일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2000억원 증가했다. 학생 수가 7만명가량 줄었음에도 사교육비 총액은 더 늘어난 것이다. 조사에 N수생은 포함하지 않았기에 실제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30조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사교육비가 늘어난 이유로 급격히 바뀌는 입시 정책이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킬러 문항 출제 배제를 선언했다. 급격한 출제 기조 변화에 사교육 의존도가
1992호 1면 기사는 전공의 파업 후 고려대 병원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진료를 받지 못해 생기는 환자들의 어려움과 의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간호사들의 고충을 담았다. 기사에 환자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의료공백 현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간호사들의 고충을 담는 것 이상으로 비상 의료대책의 허점을 메울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담았다면 심층적인 기획 기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사건의 원인이 된 전문의 사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생략됐다. 취재 협조에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 예상해 보지만, 안암병원 전공의들의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 누구나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 봤겠지만 마음에 드는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망설임에서 시작된 물음이기에 A를 택하자니 B가 아쉽고 B를 고르자니 C가 눈에 밟히는 갈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심해지면 나한테 선택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까지 든다. 이럴 때 크게 고민할 필요 없다. 옛사람들이 남긴 고전 속에 해답이 들어 있다. 소문난 식사의 기본은 맛있게 먹는 것이다.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갈등이 생길 때 짬짜면으로 해결하듯 딱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