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벗어나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사고의 범주, 명쾌한 답을 갖지 못하고 화두같이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꼽으라면 단연 가족과 국가를 들고 싶다.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채 길들여져 온 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들 단위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대안의 형성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同性의 부부나 입양 등을 통해 가족의 형태는 국가에 비하면 다양한 실험을 거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내부의 관계 문제는 그대로 존재한다. 국가에 대한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생산과 소비의 과정의 영토적 불일치 등을 예로 민족 국가의 존립 근거에 대한 의문이 나온 지 오래된 지금 세계 곳곳의 다양한 민족주의의 팽창과 부활은 무엇이란 말인가.

위기 때마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에 온 이후로 이 논의가 주춤해졌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 지역은 계속 위기 상태인 모양이다. 대륙 전체의 연대와 공통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라띠니닫(latinidad)’이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의 라틴 아메리카는 ‘메히까니닫(mexicanidad)’, ‘칠레니닫(chlenidad)’, ‘아르헨띠니닫(argentinidad)’ 등 지역보다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질의와 응답으로 가득 차 있다. 국가 정체성은 다른 국가. 민족과의 관계를 통해 더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멕시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많은 부분 미국에 대한 경계와 위기 의식의 산물이고, 칠레 쪽은 인접 국가이자 오랜 라이벌인 아르헨티나의 몰락에 가까운 상황 때문인지 지역 내의 예외주의(경제·사회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공존에 대한 전통을 회복하자는 내용이 두드러진다. 원주민, 유럽 이민 출신, 이들의 혼혈 그리고 소수 민족인 한국인. 아랍인 등이 모여서 만들어 낸 새로운 모습의 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제기도 나온다. 아르헨티나는 다소 절망감에 젖어서인지 새로운 대안보다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거대한 자본의 국가에 대한 비판과 이들이 자신을 잠식하도록 방치한 것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들 국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아니,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위협 속에 놓인 멕시코, ‘라틴 아메리카의 스위스’라는 별명에 자만하며 선민 의식에 젖어 있던 칠레, 무분별한 민영화로 국가를 외부에 팔았다고 비판받는 前대통령 메넴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아르헨티나의 자화상이 이들이 바라는 자신들의 국가에 겹쳐진다.

거처를 멕시코에 두고 있다는 이유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mexican-korean’으로 불리었던 나 역시 여전히 이들 나라에서 한국인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에 퍽이나 노심초사한 심정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다수 국가에서 한국인의 대부분이 성실하고 시간 잘 지키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착취 혹은 밀수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강한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후자에 관한 한, 오랜 군부 통치의 영향인지 국가의 통제가 뿌리깊게 남은 칠레는 예외였다. 그러나 멕시코나 구아테말라의 일부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의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인 제조업자들이 노동자들을 감금하다시피 하고 화장실 출입까지 제한하며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 산업화의 미세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대상 노동자들이 주로 볼리비아인으로 바뀌어 있을 따름.

라틴 아메리카의 남쪽에 한 달 가까이 머무는 동안, 멕시코에서는 한국인 상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구속이 있었다. 멕시코 법에 저촉되는 상업 행위를 한 한국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어찌 보면 부패한 멕시코의 관, 경찰과 상인들의 합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국경 이남의 국가들이 미국으로 흘러드는 걸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고 있는 멕시코 정부에게는 강력한 이민 정책의 일환이었을 터이다. 미국의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멕시코의 위기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여파로 그 이웃 국가들에 살던 한국 상인들까지 타격을 받았고 다시 다른 상권을 향해 갈 여력이 있었던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 멕시코였기 때문에, 이들의 규모와 여파를 멕시코 정부로서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일종의 본때 보여 주기 식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의 체포 방식에 대해서는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리포트는 한 한국인의 눈으로 걸러진 것이다. 영국 출신(태생은 더블린)의 정치학자로 멕시코에 살고 있는 열렬한 사빠띠스따 존 홀러웨이는, 권력 장악 없는 투쟁이라는 사빠띠스따의 주장에 살을 덧붙여 “지금까지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혁명,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이 국가 주권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으로 바뀐 것은 오류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방법은 잘 모른다. 그럼에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제안으로서의 신선한 충격은 있었다. 지난 한 달간도 이 신선한 제안에 한 발을 디딘 채, 나의 다른 한 발은 멕시코-칠레-아르헨티나와 그들을 관통하는 한국, 즉 국가들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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