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북한이 월드컵 8강에 올랐다. 그 소식은 당시 국내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에 놀란 우리 정부는 이른바 ‘양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중앙정보부가 중심에 선 그 프로젝트의 골자는 축구 국가대표 상비군을 만드는 것이었다. 상비군을 운영해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지를 기르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북한을 앞지르자는 계획이었다. 그 축구 상비군팀의 이름이 ‘양지’였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정의 ‘고뇌’가 묻어있는 이름이었다. 양지팀의 주요 훈련장은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잔디 축구장이었던 중앙정보부 축구장이었다. 나중에 양지팀은 화랑과 충무팀으로 재편된다.

양지팀은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의 승패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정신력과 투지였다. 기본적인 전술이나 체력은 부족해도 투지 하나만 살아 있으면 어떤 강팀도 이길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엄격한 규율과 질서는 좋은 성적을 내고 투지를 기르기 위한 처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합숙훈련’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우리만의 비법으로 여겨졌다.

요즘 다시 인기가 좋아진 히딩크 감독은 우리 국가대표팀을 맡고 나서, 몇가지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우리 선수들이 예스맨에 가까울 정도로 복종심이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감독이 한 마디 하면 그대로 따라만 할뿐 자기 의견이나 다른 생각을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월드컵 대표팀이 유럽 전지훈련중일 때 히딩크 감독은 외출외박 금지령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한 선수가 모자를 쓰고 몰래 훈련장을 빠져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히딩크 감독은 겉으로는 화를 냈지만, 속으로는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몰래 훈련장을 빠져나간 사람은 선수가 아니라 통역사였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창조적인 플레이를 강조해 왔다. 히딩크 감독에게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던 시절, 그는 무모할 정도로 체력훈련을 거듭했고 선수들에게 다양한 역할에서의 플레이를 요구했다.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불과 몇달만에 사람들은 그가 옮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많은 부분 히딩크 감독의 고집과 철학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선수들 스스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신력과 투지뿐만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가 축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선수들의 말을 으레 하는 말로 넘길일이 아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 선수들의 변화는 보다 빨라지고 성숙될 것이다. 당장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팀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한국축구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東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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