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한민국-하나 된 ‘국민’이 만듭니다.

오늘 시작하는 ‘국민’ 참여형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의 주제다. 지금은 해체된 대통령직 인수위가 뉴스 화면에 잡히면 배경 어디선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말이 ‘국민이 대통령이다’였다. 나라의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장관도 ‘국민’추천을 받았고, 새 정권의 일보 일보에 ‘국민’이 뒤따른다. 드디어 참 민주주의가 발아해 세상에 꽃 피려는가.

그런데 왜 해외 이민 박람회에 사람들이 터져라 하고, 도처에 단절과 배제에 대한 불안이 싹트고 있는지. 열심히 일한 덕에 행운도 한 몫, 그렇게 좀 잘 사는 사람이 있어야 서민도 할 말이 있다.

보수적인 계층이 한 축이 되어야 진보적인 계층도 존재 의미가 선다. 경륜과 식견을 갖춘 ‘어른’이 필요한 자리에 있어줘야 패기와 열정이 신선한 후발 주자들이 배우는 게 있다. 통장과 도장을 들고 은행 발걸음 하는 구세대가 당당할 수 있어야 인터넷뱅킹 클릭으로 계좌이체 하는 신세대가 편협해지지 않는다. 한 쪽에선 통쾌한 함성이, 다른 한 쪽에선 통탄의 우려가 엇갈린다면 지금 새 정권에 따라붙는 ‘국민’레떼루는 반절 짜리에 불과하다.

물론 ‘국민’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주변인에 머물 수밖에 없던 ‘운동권 출신’이 새 정권 중심부에 편입되는 변화. NGO활동가들이 ‘순수한 비정부단체’를 디딤돌로 ‘사회의 중심’을 넘어 ‘정부기구’의 수장 되는 변화. 북한보다 미국이 더 강력한 안보 위협국으로 규정될 듯한 변화. 이런 변화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기엔 솔직히 아직은 벅차다. 실컷 편 가르기 해놓고 우린 하나라니. 혹시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홈페이지에 북핵특사 임명자로 내 이름이 뜨는 건 아닐까. 워싱턴에 날아가 북핵문제 깔끔히 처리하란 임무와 함께. 나도 ‘국민’이고 ‘국민’이 ‘대통령’이니 말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입장을 이해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내일을 내다보는 눈과 세상을 듣는 귀가, 나라를 다스리는 손발과 세계를 아우르는 입장이 평범한 국민 수준을 맴돌아서는 안 될 일이다. 서민 대통령도 좋고, 개혁 바람도 반갑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나라 바로세우기에 바빠 대통령이 직접 노조와 협상하지 않는다고, 외교일정에 쫓겨 행사에 나와 기타 치며 노래하지 않는다고 성 내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마추어 대통령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사당치레하다 신주 개 물려 보내는 건 아닌지 조금, 아주 조금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희망은 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이 하로동선(夏爐冬扇)에서 안식을 찾기보다, 21세기를 당당히 주도하는 세계적 지도자로서 하선동로(夏扇冬爐)를 갖추는 데 더 의미를 둔다면 말이다.   

<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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