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13일 오후 서울 시청 옆에 위치한 프레지던트 호텔을 찾았다. 세계적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약속시간에서 몇 분 지나 호텔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호지 여사를 만났다. 1층에 위치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음료를 주문했다. 호지 여사는 카페의 커피가 공정무역을 통해 거래된 것인가를 확인한 뒤에야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낡고 오래된 손수건이었다. 그녀는 “직접 만든 것”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라다크에서 살 때는 옷가지도 직접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호지 여사가 16년간 라다크에서 살며 깨달았던 바를 쓴 책 <오래된 미래>는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다. 1988년 스웨덴에서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40여개국에 번역됐다. 국내에서는 96년 출간된 이후 매달 천만 부 이상 팔리고 있다.


김철규 교수(이하 김) <오래된 미래>는 한국에서도 유명합니다. 당신이 비판한 개발지상주의의 문제점이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4번째 개정판이 스웨덴에서 나왔는데, 저자로서 그 책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하 헬레나)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에 관해서 크게 관여한 바가 없지만 내 저서로 인해 소리 없이 사라질 뻔한 논쟁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습니다. 예를 들면,  ISEC(Organization of International Society for Ecology and Culture)에서 다큐로 제작한 <오래된 미래>가 50여개국의 언어로 전 세계에 전파됐습니다. 또한 IFOAM(International Federation of Organic Agricultural Movement)은 local food system을 전파하는 중이지요.

ISEC이란 기구는 현재 당신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헬레나 ISEC은 정신적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단체로 <오래된 미래>에서 제시한 지역화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 일본, 그리고 라다크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지역화에 대한 심포지엄을 라다크에서 갖고, 라다크의 NGO를 돕기도 해요. 독일과 프랑스에도 곧 ISEC이 설립될 예정입니다. ISEC은 세계적이면서도 굉장히 작은 그룹이에요. 우리는 이런 활동을 세계로 홍보하기 위해 필름을 제작했죠.

어떤 내용의 필름인가요?

헬레나 세계화는 정신적 불행을 가져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진행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석유 부족 등의 급격한 변화가 우울증을 불러올 것입니다. 바로 '당신'의 행복이 침해받게 된다는 게 주요한 내용입니다.

한국정부에서는 세계화를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기회라고 장려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제시한 모델이 굉장히 이상적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헬레나 제가 하는 것은 그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전 사람들이 세계화라는 굴레에 들어가기 전에 행복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았으면 합니다. 행복은 사람들이 정말 ‘즐길 수 있는 것’을 하게 될 때 옵니다. 함께 요리하고 하이킹하는 것과 같이. 그러기 위해선 농부들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었고 진정한 '생산'이 무엇인지. 어떠한 개발이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된다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래된 미래>의 영향이 학술적으로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은데 뚜렷한 결과물이 있나요?

헬레나 네, 바로 local food system이지요.

저도 local food system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의 급식업체가 원가절감을 위해 외국에서 싸게 들여온 음식을 사용하다가 식중독이 발생했습니다. 만약 그 지방에서 생산된 음식을 급식으로 제공했다면 식중독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헬레나 영국에서는 15년 전부터 local food system을 적용하기 시작했어요. 돈을 모금해서 지역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제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죠. 당시 영국인들은 local food system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15년 뒤인 지금 제가 제시한 모델을 현실화시키고 있죠. 저는 이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 최근 IFOAM같이 global local을 추구하는 단체도 있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유기농 작물이 각광을 받습니다만 오히려 이러한 농작물들이 대형마트에 지배받는 상황입니다. 결국 구조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헬레나 작은 농가가 진짜 농작물을 만듭니다. 대형 마트에 공급하기 위해 재배되는 유기농 작물은 천연의 땅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진정한 유기농 작물을 얻을 수 없어요. 작은 땅을 이용한 생산과 작은 마트를 활용한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local food system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비록 그 시스템에 속한 농부의 1순위 목표가 이익이라 하더라도 소비자 역시 싼 값에 좋은 유기농 작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의 압력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되는 거죠.

현재 한국에서는 서울을 떠나 신도시에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연이 가깝다는 인식이 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농부들 역시 주요 소비지인 서울에 가깝게 농지를 얻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헬레나 현재 상태에서는 바로 local food system을 현실화시키기 어렵습니다. 한국에 수입되는 농작물을 일순간에 끊어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작은 땅을 이용한다면 local food system 역시 서울에서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의복을 비롯한 다른 제품들에도 적용돼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제품이 바로 농작물인 것이죠.

김 세계화가 가져오는 소비문화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이 이러한 지역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까요?

헬레나 구매행위에서 오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당신의 존재를 깨닫는 데서 오기 때문이지요.

△ 헬레나 호지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라다크에 16년간 머물면서 라다크의 전통사회가 서구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언어학자에서 실천적 생태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1980년 ‘라다크 프로젝트’를 결성해 라다크인을 돕는 데 전념했으며 1986년 스웨덴 바른생활재단의 바른생활상을 받았다. 현재 ‘에콜로지와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의 대표로 반세계화 · 반개발 · 탈중심화를 위한 국제 연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경제적 세계화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체 형성을 내건다. 국내의 생활협동조합이 공동체 형성의 좋은 사례라 칭찬한 바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 부터 배운다>, <허울뿐인 세계화>,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 등이 있다.

△ 책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랫동안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와 그곳 사람들의 벗으로 살아왔다. 빈약한 자원과 가혹한 기후 속에서도 검소한 생활과 협동, 깊은 생태적 이해를 통해 천년 넘게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온 라다크. 이 아름다운 도시가 무분별한 개발과 세계화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녀의 대표작인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통해 초국적 세계화를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획일적인 문화를 향해가는 현대 사회에 제동을 걸고, 지역성과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라다크를 제안하고 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안전한 먹을거리, 건강한 생활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추세는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결국 자연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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