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를 만날까 하는 기대에 들어 온 대학에서 나는 일상의 나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남는 것은 방황의 뮤즈.
누구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지만, 나는 방황하기에 존재한다고 뇌까려 보자. 비생산적인 소비에, 비의지적인 운명에, 저주받은 몫에 나의 청춘을 걸어보자. 과연 나는 살아 있나. 내가 살아 있음을 확신할 수 있나. 그래서 누구를 사랑하는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 하는가. 그를 위해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릴 수 있나.
나는 그를 위해 도둑질도 할 수 있으리니. 실정법도 위반하리니. 철창에 갇히리니. 시련의 방황은 사랑하는 자들의 특권인 것을, 하찮은 연애라도 이럴 때는 그 가치를 부정할 수 없으니.
방황 가운데 가장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사랑의 고통. 사랑하면서 진정 방황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오직 달콤함을 누리고 있다면, 긴장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위에 지나지 않으리.
사랑은 나를 버리고 사랑하는 이와 둘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노력, 사랑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예상 밖의 길. 어느 사랑을 가르쳐 준 예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방황하고 있다.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시냐고. 사랑과 종교는 이렇게 나를 버리고 '내가 아닌 존재’에 이르는 방황의 길로서 극기적인 노력을 조건으로 한다. 로베르 브레송 Robert Bresson의 『소매치기 Pickpocket』(1959)에서 감옥에 갇히고서야 사랑을 깨달은 소매치기 미셸은, 면회 온 쟌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에 이르기 위해 나는 이 얼마나 기이한 길을 걸어 왔던가?”
기이한 길은 진정한 친구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니 이 길에서 나의 변함없는 친구는 거울 속의 나, 나의 그림자뿐이다(사실은 일기 쓰는 나이기도 하다). 구로자와 아키라 黑澤明는 이 길을 나의 그림자와의 대화로 풀어낸다. 사람은 사이로, 친구 사이로, 연인 사이로 존재하고, 이 보이지 않는 사이가 항상 따라 다니면서도 무시당하는 그림자들로 이루어짐을 『가게무샤 影武者』(Shadow Warrior, Kagemusha, 1980)가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도 감상해 보자. 아무도 원치 않는 사람에게도 시선을 던져보자. 아무도 원치 않는 나의 존재를 염원해보자. 항상 곁에 달고 다니면서 애써 외면하곤 하는 나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자. 그것이 人-間이라는 단어 속 ‘間’의 실체이니.
‘나’의 분신인 그림자가 남기는 방황의 길을 회고하면 ― 이상의 시 「오감도」의 거울 속의 내가 변함없는 나를 암시하듯이 ― 그림자를 드리우는 주인공 나를 묻게 된다. 이 부재 속에 현존하는 진짜 나에 다가가는 노력처럼 커다란 방황은 다시없으니, 방황이야말로 오직 내가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이자 의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대립하는 것은 오직 진짜와 가짜뿐, 진짜끼리 대립하는 법은 없으니, 진짜보다 더욱 진짜 같은 가짜들만이 설치는 세상. 싸움은 거의 언제나 진짜를 가짜로 만들어 버리는 가짜들의 승리로 끝나니. 방황하자. 진짜를 찾아서, 잃어버린 진짜를 찾아서, 잃어버린 본래의 나를 찾아서.
고려대학교의 몇몇 젊은이들이여, 우리라도 스스로 대학생다운 청춘을 자청해보면 어떨지. 비생산적인 소비로서의 방황을 함께 하면 어떨지. 그러한 보이지 않는 친구가 함께 함을 깨달을 때, 삶을 함께 사를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을 느낄 때, 나는 있는 것이니.
『소매치기』, 『가게무샤』로 인한 나의 방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내 청춘의 한 가닥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물론 세포는 노화하여 퇴물로 바뀔지언정, 영화를 감상한 나는 그대로 청춘이니, 영화 감상의 힘과 가치는 대단한 것이다. 그것을 이름하여 영화의 실제성이라 부르고 싶다. 그런데 빛의 예술이라는 영화를 어둠(無明) 속에서 보니 영화 감상 자체가 의미 있는 방황 아닌가.
『소매치기』
원제│Pickpocket
감독│로베르 브레송
주연│마틴 라살레, 마리카 그린
상영시간│75분
장르│드라마, 범죄
소매치기인 미셸은 타락한 세상에서는 자신의 범죄 역시 정당화된다고 믿으며 도둑질을 계속한다. 옆집에 사는 젊은 여인 잔느는 미셸의 병든 어머니를 돌봐주면서 그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끼지만 미셸은 그녀의 애정을 거부한다. 그러던 중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미셸에게 잔느가 찾아오고, 감옥의 창살 속에서 미셸은 비로소 잔느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부르주아의 세속적인 도덕률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미셸은 소매치기를 함으로써, 즉 반사회적인 행동을 통해 우아함의 상태에 도달하려 한다. 결국 그의 깨달음은 자신이 진정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속박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어렴풋이 근거를 두고 있는 영화로 한 젊은이의 구원에의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소매치기 행위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극히 매력적이다.
송태효(본교 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