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지구상에 꼭 가볼 만한 관광지 50군데를 선정했다. 여기엔 파리, 로마, 베니스 등의 도시와 그랜드캐년과 같은 명소 49개가 선정됐다. 하지만 50번째의 관광지는 실재하지 않는 곳. 바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였다.

디지털 복원이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복원,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운용하도록 디지털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디지털 복원기술은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영상 기술은 앞서 있으나 컴퓨터 게임과 전쟁시뮬레이션, 의학기술에 집중돼 있다. 3차원 고고학(Virtual Archaeology)이란 이름으로 문화재 디지털 복원을 처음 시작한 영국도 기술면에서 한국보다 부족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

3D 그래픽 복원은 크게 2가지로 문화재의 존재유무에 따라 사용하는 기술이 다르다. 문화재가 남아있으면 3D 스캐닝(Scanning)작업을 통해 형상을 그대로 가상공간에 나타내고, 스캔대상이 없으면 고증 자료를 근거로 3D 모델링(Modeling)작업으로 그려넣는다. 현재 문화기술연구센터에서 디지털 복원이 진행중인 ‘황룡사’와 지난해에 마무리한 ‘앙코르와트 사원’은 위의 두 기술을 이용한 거대 프로젝트다.

3D 모델링(Modeling) 기술로 복원된 황룡사

황룡사는 불국사 10배 규모의 사찰이다. 신라 삼보(三寶)중 2가지인 장육존상과 9층목탑이 있었으며 신라왕들이 100여 고승의 강연을 듣는 백고좌가 열렸던 신라 호국 불교의 대가람이다. 하지만 목조 건축물이었던 황룡사는 몽고군의 침략으로 12세기에 불타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 현재 디지털 복원 작업에 들어가있는 상태다. 문화재청은 3조 2800억원을 투입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황룡사 전체를 디지털 복원해 문화유산 체험관으로 활용하고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2035년까지 황룡사를 실제로 건축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주춧돌만 남은 황룡사 복원은 고증자료 부족으로 시작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다. 문화기술연구센터는 “황룡사 건축은 특히나 근거 자료가 부족해 자문집단을 동원해 학계의 정설로 통하는 모델을 선택해 복원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모델이 정해진 후 가상도면에 근거해 와이어프레임(WireFrame)이란 골격으로 기초형태를 구성하는 3D 모델링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3D 모델링이 끝난 후의 황룡사는 그저 골조만을 간신히 갖춘 모습이다. 이후 쉐이딩(Shading)작업을 틍해 광원효과나 그림자를 가상건물에 적용해서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게 된다. 이어지는 맵핑(Mapping)작업은 폴리곤(Polygon : 3D 객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나, 와이어프레임으로 모델링된 가상건물에 색채, 재질감, 문양, 세부 건축 양식 등을 입히는 작업이다.

모든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매핑. 황룡사는 매핑을 할 대상이 없어 상당부분 추측을 통한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문화기술연구센터는 “서기 645년의 신라로 돌아가 최적의 매핑소스를 찍어올 수 없으니 당시 백제장인들이 만들었던 일본의 법룡사 5층탑을 역추적해 매핑소스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황룡사는 현재 내부만이 남은 상태다.

▲ (좌)EC깔을 입힌 황룡사 종루,(우)도면을 바탕으로 종루의 모델링 작업(사진제공=KAIST문화기술연구센터)

3D 스캐닝(Scanning) 기술로 복원된 앙코르와트

동남아시아 캄보디아에 위치한 앙코르와트 사원은 대상이 80% 정도 남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앙코르와트와 같이 문화유산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 3D 스캔 기술을 이용해 문화유산을 그대로 가상공간으로 옮긴다.

3D 스캐닝은 레이저를 실린더 렌즈와 갈바노(galvano) 거울을 통과시켜 직선모양(stripe)의 레이저로 바꿔 대상에게 쏜 뒤 돌아오는 파형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원리다. 1차원의 수많은 점으로 구성된 이 데이터는 3차원 모델링 기법을 적용해 완벽한 3차원 입체의 문화유산으로 재생 가능하다. 하지만 앙코르와트 사원은 한 변의 길이가 1.4 km인 세계 최대 단일건물이기 때문에 전체 스캔작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문화기술연구센터는 프랑스의 건축학자 나필리앙(Nafilyan)이 1964년에 작성한 앙코르와트의 250장 실측도를 바탕으로 3D 모델링 작업을 끝낸 후 주요 부분은 3D 스캐닝했다. 문화기술연구센터는 “실측작업은 개인의 능력, 기후, 컨디션, 시야의 차이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이 때문에 3D 스캐닝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산출된 데이터로 마지막 매핑작업에 들어갔다. 문화기술연구센터는 “푹푹 찌는 폭염과 싸우며 작업을 한 끝에 사진 1만장, 컴퓨터 용량으로 50기가바이트(GB)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가 산출됐다”고 밝혔다. 이렇게 정사(正寫)사진이 마무리되면서 세계 최초로 앙코르와트 전체 건물이 사이버 공간에 올라갔다. 이 디지털 복원 자료들은 앙코르와트 사원 근처에 세워질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디지털 복원, 문제점은 없나

국내 디지털 복원기술은 다양하고 복잡한 기술과 노력으로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갖고있다. KAIST 문화기술 연구센터의 박진호 선임연구원은 “복원 영상을 100% 실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복원의 많은 부분이 추측에 근거했고 복원가에 따라 사용하는 색채나 재료의 질감 등은 얼마든지 실제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인들은 디지털 복원으로 인해 오히려 상상력의 여지를 박탈당할 수 있다.

또 다른 단점은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기술연구센터가 지난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디지털 복원한 자료를 토대로 신라왕경을 가상현실로 재현했을 때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명비평가 기소르망(Guy Sorman)교수가 “건축물 안에 사람이 없어서 생동감이 없다”라 지적했다. 문화재 복원의 최종단계는 건물이나 유적지 복원이 아닌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의 주최는 ‘인간’이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그 다음이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앞으로는 어떤 문화유산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화유산을 어떠한 기술력으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국가의 위상에 직결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 말한다. 현재 해외에서 유통되는 아시아 관련 서적을 보면 중국과 일본은 물론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유독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한국이 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하는데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과 활용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의견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노력을 가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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