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주의'도 지나치게 순화된 표현이다. 사법정의가 금권에 밀렸다는 평가가 더 정확한 지적이다. 지난 6일 서울고법 형사 재판부에서 열린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사법의 신뢰성과 경제의 투명성을 해치는 또하나의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다.

회사돈 1000억원 이상을 비자금으로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회장은 스스로가 혐의의 상당부분을 인정하고, 재판부도 정회장에 대한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이미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범법자에게 2심에서 집행유예 5년, 8400억원의 출연, 강연과 신문기고를 통한 사회봉사명령으로 그 처벌을 가볍게 해줬다.

화이트칼라 경제사범에 대한 사법처리 비율이 일반 절도와 폭행 같은 범법사건과 비교해 훨씬 적은 단죄를 받고, 집행유예를 받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법부는 이들에 대한 엄벌을 약속해 왔다. 하지만, 경제사범에게 신문기고와 강연을 하라는 것은 어떤 주제를 말하라는 것인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법원이 현대차의 경제적 파급효과나 재벌총수의 사회공헌약속을 양형참작요소로 삼는다면, 결국 참작요소를 많이 가진 자들만이 법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현재의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맴돌이에서 벗어나려면 가진 자일수록 더 책임을 묻고, 당당히 스스로 지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유전무죄, 대마불사 식의 사고로는 우리 사회의 진일보는 어렵다. 이번 판결이 비슷한 유혀의 잠재적인 범죄를 방지시키기보다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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