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입니다. 나흘만 있으면 경칩이군요. 이제 여기 저기서 생명의 잔치들이 벌어질 겁니다. 캠퍼스에도 지금쯤 들뜬 웃음소리와 가벼운 발걸음들이 가득 하겠군요.

매해 새로 맞는 봄이지만 올해는 맘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지구 저편이라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나라, 중국 아프간을 지나 이란 옆에 있는 이라크엔 생명의 약동보다는 전쟁의 암운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 미국은, 아니 부시행정부와 군수업자들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대량파괴 무기를 가진 위험한 나라를 그냥 둘 수 없다,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대량파괴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더 강력하고 첨단화된 최신식 대량파괴 무기를 동원해서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광기와 집착에 가까운 미국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우린 지난 91년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안방에서 지켜봐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당신이 예민한 눈과 귀를 가졌다면, 찢어지는 폭탄소리에 섞인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어머니의 절규를 들을 수도 있을 거구요. 어쩌면 작렬하는 섬광너머 얼핏 스치는 공포에 질린 하얀 눈동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가슴이 저릴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애써 막고 침묵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침묵은 또 다른 침묵을 가져오고 또 다른 침묵은 전쟁의 그림자가 한반도에 드리워서야 때늦은 비탄과 후회로 바뀔지 모를 일입니다.

지난 달 15일엔 전세계적으로 천만 여명의 사람들이 침묵을 깨로 길거리로 나와 전쟁반대와 평화의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스스로 인간방패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언제 폭탄이 떨어질 지 모르는 바그다드의 거리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7살 남효주 양 모녀를 비롯해 십 여명이 이 행렬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두렵긴 해도 양심의 소리를 좇아 길을 나섰다는 이들의 외침이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행보를 막을 수 있을 지 그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폭탄도 이 작은 메아리를 완전히 삼킬 순 없을 겁니다. 그 소리에 귀기울이는 수많은 양심이 있는 한 말입니다.

1930년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착취에 항거해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남루한 옷가지에 지팡이 하나만 들고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즉 ‘진리의 굳은 의지’를 따라 길을 떠난 것이죠. 그가 첫걸음을 뗄 때 인도도 영국제국도 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거대한 대영제국도 이 위대한 영혼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건 패권과 무력이 아니라 생명과 정의를 소중히 여기는 양심과 행동이었습니다. 이 달 15일에도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 전쟁반대와 평화의 목소리를 모은다고 합니다. 안암골에도 침묵이 아닌 생명과 평화의 봄기운이 가득하길 바래 봅니다.

<空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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