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고대신문
신입생 때 고대점퍼가 입고 싶었던 정 모(이과대 화학05)씨. 3학년이 된 지금까지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없었고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정씨는 “과?반 학생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기본적인 행사진행도 힘들어진다”며 “이대로라면 결국 학생회는 학생들의 대표라는 대의마저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 74개 과,반 중 29곳 학생회 없어
안암 캠퍼스 15개 단과대학에는 총 74개의 과?반이 있다. 이 중 학생회가 존재하는 과?반은 45개다. 나머지 29개 과?반은 학생회준비위원회(이하 학준위)로 학생회를 대체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만 반대표, 학번대표가 친한 동기나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일을 진행한다.

구체적인 운영상황은 더 심각하다. 문과대는 16개 과?반 중 5개 반에만, 이과대도 6개 반 중 2개 반에만 학생회가 있다. 생과대, 공대, 보과대 등은 각 과?반에 학생회 체계는 잡혀있는 편임에도 운영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세연 문과대학생회 집행부장은 “단대별로, 과?반별로 학생회 상황은 천차만별이지만 전반적으로 활동이 정체돼 있다”고 말한다.

본지는 지난 달 16일부터 2주간 ‘과/반 학생회 위기와 대안’을 주제로 과?반 학생회 집행부 119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과?반 학생회 집행부의 77.0%가 ‘과?반 학생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 부족(87.5%)’을 들었다.

과,반 학생회가 살아남으려면
학생들의 외면 때문에 과?반 학생회 운영이 어렵지만 정작 학생들의 85.8%는 과?반 학생회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손장권 (문과대 사회학과)교수는 “학생들이 과?반 학생회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을 학회나 소모임을 통해 찾고 있다”며 “과?반 학생회가 살아남으려면 학생들에게 공동체 의식이나 소속감뿐만 아니라 진로를 설정하고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제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학생들은 ‘전공학문(41.1%)’과 ‘토익, 학점 등의 취업관련 문제(23.4%)’, ‘연애, 여행, 스포츠 등의 취미활동(16.3%)’ 등을 꼽았다. 하지만 현재 과?반 학생회가 진행하는 행사 중 대부분은 학생들의 관심사를 대변하지 못한다. 허 모(문과대 영어영문03)씨는 “과?반 행사에서 남는 것은 술자리라 허탈하다”며 “고학년이 되면 당연히 내 관심사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과?반 학생회가 필요없다’고 응답한 33.6%의 학생은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39.3%)’, ‘학생회보다는 동아리나 학회, 소모임 등에 참여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14.0%)’라고 밝혔다.

언론학부, 학회.소모임 덕분에 학생참여 활발
이러한 학생들의 변화를 잘 반영한 예가 언론학부다. 현재 언론학부에는 광고PR학회, 보도사진부, 사회과학연구회, 운동 소모임 등 총 9개의 학회와 소모임이 있다. 학회와 소모임엔 대부분의 언론학부 학생이 가입해 활동하며 1,2학년뿐 만아니라 고학년도 많다. 이렇듯 학회와 소모임이 잘 진행되는 이유는 취미와 관련된 소모임뿐 만아니라 전공과 관련된 학회도 많아 선택의 폭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공 관련 학회에서는 세미나와 스터디, 선배들과의 교류도 활발해 취업이나 진로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언론학부는 학생회가 없지만 행사를 기획하거나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학준위가 학회와 소모임장들이 모이는 자치단체연합회의를 소집한다. 학회와 소모임에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기 때문에 자치단체연합회의가 일종의 집행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달 4일(일)에 있었던 ‘과?반 학생회 학교’에 참가한 과?반 학생회 집행부 30여명은 과?반 내에 학회와 소모임을 활성화 시킬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정대헌 정경대학생회 학술국장은 “학생회와 학회, 소모임은 상생해야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학회와 소모임을 다각화해야할 뿐만 아니라 학생회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수에 의한 운영 구조 탈피해야
한편 학생들은 ‘과?반 학생회 활성화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소수에 의해 운영되는 구조 탈피(30.0%)’를 꼽았다. 정보통신대의 한 남학생은 “한 학년만 해도 약 110명인데 집행부는 15명 정도밖에 안돼 학생과의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소외되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만은 학생들이 과?반 학생회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과?반 학생회가 ‘필요없다(14.3%)’고 답한 학생들은 그 이유로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39.3%)’를 들었다.

타 단과대에 비해 비교적 과?반 학생회가 잘 운영되는 정경대는 행사 때마다 기획단을 모집해 학생들을 학생회 일에 참여시킨다. 또한 화장실 게시판이나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한얼(정경대 통계06)씨는 “농활, 주점 등 행사가 있을 때 기획단으로 참여하면 소속감도 생기고 협조가 잘 되 반 분위기가 더 좋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학생들이 집단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대학 내에 나타나는 새로운 민주주의로 볼 수 있다”며 “학생들이 원하는 과?반 학생회로 거듭나기 위해선 교수들의 관심과 학교의 재정적인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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