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9 13:56 (화)
달리의 시계 2편
달리의 시계 2편
  • 고대신문
  • 승인 2007.11.0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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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창간 60주년 현상문예 당선작_소설부문 이동원 作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상륙했다. 곳곳에서 물난리와 산사태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산 속에 홀로 있는 소년이 걱정이 되어 우중을 뚫고 소년에게 달려갔다. 산길 입구로 향하는 도로와 연결된 다리가 불어난 계곡 물에 잠겨 내를 건널 수가 없었다. 나는 새로운 다리를 찾기 위해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마침 건너편 냇가에 있던 아카시아 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서 자연스레 다리가 된 곳을 발견했다. 나무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진 아카시아나무는 반쯤 물에 잠겨 흙탕물에 금방이라도 휩쓸릴 것 같았다. 나는 냇물로 뛰어들어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거센 물살에 밀려 흔들거리는 나무줄기를 더듬어 밟아가며 조금씩 내를 건넜다. 발을 헛디디면 물에 휩쓸릴 것 같아 건너는 내내 등줄기가 뜨끔해졌다.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흙과 돌들이 뒤엉킨 냇물이야말로 죽음이라는 혼탁한 세계였다. 산을 오르는 동안 산비탈이 무너져 뻘건 흙이 흉측하게 계곡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 것이 보였다.
  다행히 소년이 살고 있는 집은 그림처럼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소년은 평소에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던 올빼미 모양의 중국제 탁상시계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는 ‘3’ 에 있던 시계 바늘을 빙글, ‘7’ 에 돌려놓고 후줄근하게 젖어 있는 내게 들이밀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3시입니다."
  소년은 윗입술을 빨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년은 마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세계 표준 시(時)라는 인류의 약속에 불과한 시간이 산 속에 버려진 조로증 환자에게조차 미친다는 사실이 다소 불합리한 게 아니냐고, 단 둘만의 약속으로 새로운 시간 체계를 창조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열세 살짜리 소년은 이처럼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과신해 가끔씩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3시는 아니죠?"
  "물론이지요, 두 나라 사이에는 대서양이라는 널따란 시차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흐름은  똑같다고 볼 수 있지요. 남아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시간의 양은 같은 것처럼."
  "흐름이라뇨, 시간이란 게 실체가 있는 건가요?"
  그것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시간이 인위적인 척도에 불과하다면 시간의 권위는 야담으로 전락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나 뚜렷이 인식하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자니 물리학적인 시간의 운동성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통합된 에너지, 질량과 굽어진 시공간 방정식을 발표했을 때,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생소한 이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발견에는 그에 걸맞은 언어가 필요했는데 언어는 아직 창조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년은 당시 학자들처럼 의혹의 눈초리를 감추질 못했다.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물리학적 이론으론 가능하지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천천히 턱을 끄덕이는 소년의 얼굴이 무너질 듯 창백해 보였다. 이제 겨우 원숭이를 벗어난 우리 인간에게 빛의 속도라니, 더 이상 소년을 절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소년에게 희망을 건네고 싶었다. 그림이야말로 3차원적 행위를 2차원의 개방된 평면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라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멘트 속에 묻힌 것처럼 단단하게 고정된 시간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다고 말했다.
  "가령 달리의 <보이지 않는 잠자는 여인, 말, 사자등> 이라는 작품을 보면 구형체를 지나는 선은 변형을 거쳐 곧장 직선으로 뻗어갑니다. 여기서 a에서 b로 이르는 선이야말로 화가가 그 구간을 직선으로 팔을 움직였다는 명확한 증명이겠지요. 말하자면 화가의 3차원적 행위가 2차원적 평면으로 옮겨왔다는 겁니다. 그 와중에 시간은 광폭한 세월이 흘렀어도 일 억 년 전의 투명한 호박(琥珀)에 갇힌 원시호리벌처럼 도망갈 틈을 잃어버리는 거지요. 그 순간에 달리의 눈은 꼼짝없이 선을 응시했을 것이고, 그의 뇌도 선을 그리는데 온통 집중했을 것이며 그의 심장은 팔과 눈, 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피를 뿜어댔을 테지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자신의 행위를 농축 시켰을 뿐만 아니라 무한정 소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달리의 정신세계의 부분이랄 수 있는 색면구조, 배치의 변화, 대비관계, 상징 등과 함께 견고한 화면구조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어 달리의 행위는 시간의 틀을 깨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화집에 눈을 고정시킨 소년의 눈이 반짝 빛을 내뿜으며 거친 심호흡으로 가느다란 가슴이 들썩였다. 주름투성이 얼굴에 연필로 그은 듯한 마른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어느 새 그의 손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내겐 별로 시간이 없어요."
  "아티스트란… 드로잉이라든가, 어떤 예술적 안목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열정 아니겠습니까?"
  소년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너울거렸다.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한결 기분이 나아지면서도 가슴 깊숙이 묵직한 납덩이가 가라앉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은 끝내 떨칠 수가 없었다. 소년에 비해 내 욕망은 까닭 없이 무겁고 음침했다. 

  나는 소년에게 무엇을 제안할까 머리를 싸매고 며칠간 궁리했다.
  하루가 다르게 소년의 몸은 쇠약해지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예술적 기교는 둘째치고 최소한의 육체적인 힘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나는 드립페인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뿌리기작업‘을 꺼냈다. 그것이라면 소년도 거뜬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 잭슨 폴록!"
  소년 자신도 나처럼 이리저리 궁리를 한 듯했다. 내가 '뿌리기작업'하고 말을 꺼내자마자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화가의 이름을 외쳤다. 나는 너무 많은 터부를 소년에게 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머리를 들었다. 정말 소년을 소년이라 정당하게 부를 수 있을까? 소년이란 시간과 마찬가지로 잘 포장된 억압적인 개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소년은 마른침을 발라가며 화집에서 잭슨 폴록의 작품들을 찾아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들여다보았다. 증폭된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잭슨 폴록의 작품이 새로운 것은 아닐텐데 막상 소년 스스로 뿌리기작업을 한다고 생각하자 달덩이 같은 심미안이 떠올랐다. 동시에 생존본능과 결합해 치미는 창작욕구가 내가 힘들게 보듬은 무조건적인 열망과 더불어 형언키 어려운 동질감이 형성되었다.
  나는 작업을 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방안에 놓인 잡다한 것들을 들어내고 방바닥에 신문지를 깐 다음 아트지를 펼쳤다. 물감이 튈 것을 대비해 벽을 둘러가며 신문지를 붙여 놓았다. 내가 물감을 개는 동안 소년은 방 귀퉁이에 서서 팔짱을 낀 채 펼쳐진 아트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나름대로 구상을 잡는 모양이었다. 힘들때마다 화집을 들여다보며 거칠게나마 다듬은 예술적 안목이 그의 눈가에 빛났다. 그는 정말 고독한 아티스트처럼 보였다.
  준비가 끝나고 소년에게 붓을 건네자 소년은 손을 저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물감과 접촉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몸을 온통 물감과 뒤섞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먼저 노란색 물감통을 들고 아트지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집도 직전의 의사처럼 긴장된 엄숙한 모습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고 길고 예리한 촉수 같은 눈빛을 뻗어 아트지 위에 원을 그렸다. 마치 먹이를 찾는 광야의 표범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닥에 깔린 아트지를 세세히 훑었다. 잠시 후, 소년은 아트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물감에 천천히 손을 담갔다. 소년에게서 이전의 초라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얼굴은 빛났으며 걸음은 활기차고 신중했다. 호흡은 가빴고 두 눈은 광채를 뿜다 못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소년은 물감을 한 움큼 쥐고 농부가 비료를 뿌릴 때처럼 반원을 그리며 아트지 위로 물감을 뿌렸다. 노란 물감이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그가 그린 반원의 궤적을 확장시켜 아트지와 충돌하면서 튀어 올랐다. 불규칙과 의외의 순간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우주의 생성과도 같은 극적인 장면이 일어났다. 물감은 조금도 주저치 않고 흰 종이 위로 단도처럼 내리 꽂히며 몰아치다 밀려가고, 산산이 부서지는 도자기같이 눈부신 파편을 만들며 아트지 위로 거미줄마냥 방사선을 뻗치는 것이었다.
  소년은 춤을 추는 무희 같았다. 부드럽게 관절을 꺾고 사뿐사뿐 동선을 그리며 스치듯 종이 위에서 발을 구르다 느닷없이 몸을 돌리며 허공에 대고 팔을 휘젓거나 긁어댔다. 물감의 색을 바꿔가며 소년이 움직일 때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선들의 급작스런 형성과 흘러내림, 급격한 공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생성된 선은 모아지고 엉키며 갖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형체로 탈바꿈했다가 어느새 애초 선이 가졌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다시 무수히 나뉜 공간을 드러냈다. 작은 새에게 하늘이 절대적인 공간이듯 아트지는 각각의 미세한 물감입자에게 있어선 전 우주였다. 물감이 튄 소년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기도 하고 넋 나간 표정이 되었다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의 온몸은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으로 범벅이 되어 흡사 귀신처럼 보였다. 나는 그 때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황금빛 반구를 보았다. 황금빛 광채가 소년의 주위를 감싸고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빛이 아니라 황금빛 비늘을 가진 이름 모를 물고기 떼였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황금빛 물고기 떼가 소년의 주위를 맴돌면서 끊임없이 소년과 부딪뜨리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시간의 정체였다.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소년을 갉아 댔다. 그러나 소년이 팔을 휘저으며 물감을 뿌려댈 때마다 황금 물고기들은 물감 속에 갇혀 종이 위로 널브러지며 발버둥을 쳤다.
  “여기 좀 봐요."
  나는 여전히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씨근거리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주름진 얼굴에서 물감과 땀이 범벅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얼굴을 닦으려하자 소년은 내 손을 슬쩍 피하면서 종이 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우리가 많을수록>이에요."
  나는 복잡하게 뒤엉킨 선들과 흐트러진 점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정말 그곳엔 아메바와 해파리같이 생긴 형태가 부드러운 해저 속에서 유유히 유영을 하고 있었다. 나비 떼 같은 모양의 형체는 물에 뜬 낙엽처럼 불안하게 미지를 상징하는 듯한 수평선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일렬종대를 지어 몰려가고 있었고 하늘은 어두운 빛깔의 운무로 가득해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년이 흩뿌린 물감은 의외로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그만큼 그 스스로 황당하고 고통의 깊이가 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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