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대학가에서 반전 열기는 뜨겁지 않다. 국민의 70-80%가 이라크전을 반대하고 이에 힘입어 자국 대통령이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준비를 견제하면서 프랑스가 국제무대에서 미국비판의 핵심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대학내 각종 게시판에는  반전과 반미 포스터나 유인물들이 붙어있지만, 작년 대선당시 극우파에 반대하며 열렸던 대학가의 대규모 정치토론과 학생들의 적극적 시위참여 분위기에 비하면 이라크전 문제로 대학가가 술렁거리지는 않아 보인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시작된 이래 줄곧 무기사찰단 활동기간의 최대한 연장과 유엔논의를 통한 사태해결을 주장하면서, 전쟁이 국제사회가 동의할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도 작년 가을이래 미국의 독자적 군사행동에 독일의 불참여를  표명하면서 미국의 독주에 반대하고 있다. 1월 22일 독불 상호 우호조약 40주년 기념 정상회담에서 두나라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고 유엔을 통해 사태해결을 선언했고, 2월초 양국을 연이어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 입장을 지지했다.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는 유엔에 전쟁결의안이 상정될 경우 반대표나 투표거부를 행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월 15일 전세계적인 반전시위의 날, 파리에서는 50-60만명이 참가한 시위가 있었는데 이는 당일 런던이나 로마에서 100만명과 300만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에 비해 작은 규모였다. 영국과 이태리의 시위대가 대규모였던 것은 미국입장에 일방적인 추종만 하고있는 자국정부에 대한 반대의 표시였다.   프랑스인들,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반전을 외치고 있지만 이라크 문제가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은 유엔결의 없이 독자적으로, 혹은 일부 국가들의 지지와 동참만으로도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전쟁이 시작되면 프랑스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오히려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고있다. 끝까지 전쟁을 반대하거나, 공식적 입장표명 없이 중립을 지키거나, 외교적인 지지만을 하거나, 최소한의 군사적 동참을 하거나, 모든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 

 프랑스 국내여론은 전쟁이 발발하면 자국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일부 정치가들은 미국에 대한 일정한 지지를 통해 전후 이라크 관리문제 논의에서 영미의 독주를 견제하고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익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전쟁개시 이후 지금까지의 입장과 크게 모순되고, 국내여론을 무시하는 경우의 수를 택한다면  반전과 정부비판을 위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될것이라고 손쉽게 예측되고 있다.

 프랑스 학생들이나 국민들은 자국이 미국에 비해 국제무대에서 군사적,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외교적, 문화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전세계에 전파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과, 프랑스 역사가 보여주는 관용, 연대, 인권에 대한 가치가 지구촌에 보다 깊게 뿌리내리게 되기를 원한다. 대외관계에서 프랑스가 이런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논리대신 국가 이기주의나 힘의 논리를 선택하면 늘상 학생들이나 시민들은 그때그때에 아니면 차후에라도 정부를 크게 비판한다.
 이라크 전쟁이 실제로 시작되면, 그리고 이때 프랑스가 국민여론에 반대되는 입장을 택한다면, 프랑스 대학가에서, 아니 전 프랑스에서 반전운동이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반전운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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