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taboo)란?보복이나 불이익이 두려워 비판과 도전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집단, 관습, 현상 등을 지칭한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사회에 조성된 금기들 중 깨야 할 것은 과감히 손대야 하며, 이로 인한 정치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다. 제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지는 본교 언론학부 수업인 취재보도실습(담당교수 : 김원호)의 학생 40여명이 전국 대학교수 153명을 대상으로 벌인 앙케이트 결과를 바탕으로, 차기 대통령이 깨야할 5가지 금기를 선정했다.

1. 종교계 비판 터부
현재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론 경찰, 검찰 등의 사정기관과 재벌, 국회, 언론계 등이 꼽힌다. 영향력을 가진 대부분의 기관과 집단도 비판과 의혹에 직면하며 견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유독 종교계만은 일종의 성역으로 남아 비판의 화살을 피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언론은 종교계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비판적인 보도를 해왔으나 매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일례로 불교계의 비리의혹을 다룬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이 조계종 측의 구독거부운동 등 격렬한 항의에 밀려 지난 달 30일 조계종 총무원을 직접 방문해 사과함으로써 언론권력조차 종교계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교계 비판과 관련해 PD수첩의 송일준 PD는 종교관련 보도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 오히려 왜 종교를 종교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세속적인 시각에서 비판하느냐는 비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종교계가 왜곡된 의미의 성역이 된 근본 이유에 대해 ‘종교비판자유시민연대’의 신용국 사무처장은 “종교단체에 너무 많은 특권을 주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를 종교의 자유무역지대로 비유했다. ‘종교법인법 제정추진 시민연대’의 공동대표 손혁재(경기대 정치학)교수 또한 “최근 들어 종교가 일종의 권력층이 된 것은 표심을 얻으려고 정치인들이 종교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원칙인 정교분리가 정교유착으로 바뀌는 후퇴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2. 북한 비판 터부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소위 햇볕정책 추진의 여파로 특히 집권층과 정부당국자 사이에선?북한을 비판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비판은 북한을 자극하고 결국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할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간혹 북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평화안보의 적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유호열(인문대 북한학과)교수는 “북한을 찬양하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서는 터부시 돼 있다”며 “이는 정치적인 불안정성과 경제교류약화에 대한 걱정, 그리고 국민정서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라 분석했다.

남한이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동안 북한 인민의 인권은 추락하고, 납북자 등 남한 국민들의 권리문제마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북한은 협력의 대상이 아닌 언제까지나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동훈(언론학부)교수는 “남북관계에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남과 북이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과 북한에 대한 이성적인 비판을 금기시하는 일이 맥을 같이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3. 진보-보수 연정 터부
한국사회에는 진보와 보수를 칼 같이 나누려는 경직된 정치풍토가 조성돼 있다. 그러나 한국에 정작 진보와 보수를 정의하는 개념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장집(고려대 정치외교학)교수는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그 구분이 모호해 진보가 보수가 될 수 있고 보수는 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치계와, 국민들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편 가르기와 힘 싸움을 계속하는 모습이다.

이는 한국전쟁이라는 혹독한 경험을 겪으면서 상대방의 정치이념을 용인하거나 함께 공존하지 못하는 경직된 정치풍토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 정치풍토 하에서 정치세력들은 서로를 배척하는데 급급하고, 연정논의는 정치적 타협이나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손장권(문과대 사회학)교수는 “한국 정당들은 정작 자신은 분명한 색깔을 갖지 못한 상태이면서 불분명한 이분법적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고 비판한다”며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 이어 그는 “각 당마다 그 내부의 이데올로기가 분명히 정립된 사회라면 오히려 이런 혼란이 없을 것이고 연정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공존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했다. 남의 ‘색깔’을 따지기 전에 자신의 이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개인 부(富) 향유의 터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평준화와 분배를 중시했다. 상당부분 제도적인 성과를 얻은 반면, 가진 자가 죄악시 되는 풍조는 점차 짙어졌다. 윤영민(언론학부)교수는 “참여정부 이후 획일적 ‘평등’을 중시하는 정책 등에 따라 국민들이 부자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됐다”며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쓰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중국을 대비해 "중국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인데 반해 한국은 가장 사회주의적인 자본주의 국가"라 평가한다. 한국이 세계 경제 12대국에 포함되면서도 실제 정치·사회체제는 사회주의 국가 성향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김원호(언론학부)교수는 “가진 자가 자신의 부를 향유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풍조를 과감히 깨는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물론 여기에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배려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라 말했다.

5. 친(親)외국 언행 터부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친(親)일본적 발언은 한국사회의 확고한 금기사항이다. 2000년대에 들어 반미감정이 급격히 퍼져 나가며 친(親)미국 언행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동북공정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거세지자 중국을 치켜세우는 발언도 사라졌다. 이젠 드러내놓고 친(親)외국적 언행을 하는 공인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친(親)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식민지배 당시의 ‘매국노’와 혼동하는 모습을 보인 결과다.
지난 2005년 조영남씨는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통해 방송은 물론 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의식은 일본 식민지 시대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노무현 대통령이 표방한 소신 외교는 이러한 국민들의 반(反)외국 풍조을 반영한 것이었으나 결국 감정적 외교로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의회연설이나 기자회견, 워싱턴생가 방문, 공식만찬 자리 등에서 눈에 띄는 언사와 행동으로 친미 행보를 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사실 반미 성향을 보이고 있고 역대 대통령 또한 반미 노선을 걸어왔으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소신 행보를 걷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리외교를 중시하기 위해선 친(親)외국적 언행을 과감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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