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해상이 아닌 해안만으로 지정된 국립공원다웠다. 하지만 태안반도해안의 아름다움은 100미터 남짓 떨어진 언덕에서 처음 본 그때까지였다. 자원봉사를 위해 찾아간 태안군 이원면 여섬마을의 조그만 해안가는 까맣게 얼룩진 바위들과 역한 기름 냄새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듯 했다.

피해 적다고 차선에 둬서야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험한 고개 하나를 넘어 도착한 여섬마을 해변에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어딨냐는 질문에 한 군청직원은 "사고 이후 주민들이 매일 죽기 살기로 나와 일해서 대선투표일인 오늘은 쉬라고 했다"며 "노인들이 하루도 안 쉬고 일하면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 한 곳이었다. 하지만 피해가 덜 하다는 이유로 방제작업이 늦어져 바위나 자갈 틈새로 침투한 기름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자원봉사를 위해 모인 팀은 본지 기자로 이뤄진 팀까지 합하여 총 네 팀. 다섯 명의 군청직원이 봉사자를 위한 작업지도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작업 설명이나 안전교육은 없었다. 곧바로 팀별로 구역을 나누어 바위틈에 낀 기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피해가 적은 지역이라고는 하나 방제작업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답답한 기분에 마스크를 벗고 바위틈을 30여분 헤집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굳은 기름은 아무리 헝겊으로 문질러대도 닦아지지가 않아 바위 하나를 다섯 명이 닦는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봉사를 온 건지 관광을 온 건지
피해지역으로 잘 알려진 곳은 상태가 나아졌지만 여섬과 같이 조그만 해변은 그 피해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평택교육청에서 일한다는 이영길(53세·남)씨는 "처음 와서 볼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적어 보였는데 일을 해보니까 다르다"며 "해가 뜨면 기름이 마르고, 물이 들면 바닥 깊숙이 침투해 있던 기름이 다시 올라와 결국 작업에 진전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방제 작업은 오후 3시 반까지 계획돼 있었지만 2시가 지나자 어느새 한 팀은 모래사장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부 봉사자들의 불성실한 태도는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한 마을주민은 "노인들은 몸이 약해서 모래포대 하나 못 드는데 봉사자들 아니었으면 이만큼 복구가 안됐을 것"이라면서도 "한두 시간만 하고 가는 사람들의 경우, 두고 간 방제장비의 뒤처리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먹고 살 생각하면 막막하지"
이번엔 피해가 좀 더 심하다는 학암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석양이 비춘 해변은 절경이었지만 서해안에서도 곱기로 유명하다는 학암포의 모래는 황금빛이 아니었다. 학암포의 모래사장에 든 옅은 기름기는 모래 본래의 색을 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방제작업이 시급한 곳은 해수욕장 근처에 위치한 바위들이다. 바위의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지만 바위까지의 이동거리가 멀어 봉사자들이 가기 꺼려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당장 내일의 생계가 걱정이다. 인근의 횟집들은 더 이상 회를 팔지 않는다. 방제작업을 하는 몇몇 해경들이 직접 사온 삼겹살과 함께 소주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근처 횟집주인인 이상수(59세·남)씨는 "지금 수족관에 있는 고기들은 기름 유출 전에 잡아 놓은 것인데, 손님들이 찾질 않아 아직까지 못 팔았다"며 "예년 같으면 지금쯤이 성수기다"라고  아쉬워했다.

횟집만이 아니다. 사고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한창이었을 굴 채취와 꽃게잡이가 언제 재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방갈2리 김두호(69세·남)이장은 "한창 꽃게 철엔 일 년이면 2,3억을 벌어. 돈이 되니까 빚을 내서라도 배를 굴렸는데 이제 다 끊기게 생겼지. 여관이나 펜션 짓느라 빚진 사람들도 많은데?"라고 막막한 심정을 드러냈다.

다음날(20일) 오전 8시 반 학암포해수욕장 방제작업 지휘본부에는 방제작업을 위해 주민들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낚시 손님을 태우던 배들은 기름제거를 위해 바다로 나가고, 굴을 따기 위해 모래사장을 달리던 사륜 오토바이는 흡착포와 헌 옷가지들을 나르고 있다. 노인들은 계속된 방제작업에 지친 모습이 역력한데도 쉬지 않았다.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문명석(69세·여) 할머니는 "몇 사람 실수로 온 국민이 그냥…"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보상받을 길 없는 '맨손업자' 

그나마 학암포처럼 교통이 편리한 곳은 봉사자들이 많아 방제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된 상태다. 이택준 인천해경해양오염지도계장은 "교통문제로 접근이 어려워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이 계장의 안내를 받아 인근에서 가장 오염이 심하다는 원북면 황촌리 마위2 지역을 찾아갔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20분정도를 가자 방제물품을 옮길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산을 깎아서 낸 흙길이 보였다. 해변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몇 대의 트럭이 길을 트기 위해 오가고 있었다.

해변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오전 내 진행된 군인들의 방제작업으로 상태가 회복된 모래를 제외하고는 모든 자갈과 바위들이 기름에 뒤덮여 있었다. 자갈들 사이를 손으로 훑자 굳기 전의 초콜릿처럼 걸죽한 기름들이 따라올라 왔다. 현재 원북면엔 접근이 어려워 방제작업이 이뤄지지 못한 채 방치된 곳이 섬을 합해 일곱 군데나 된다.

마위2지역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주로 군인들과 이웃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에게 말을 걸자 한숨이 되돌아온다. 전옥선(62세·여) 할머니는 "와서 보니까 기름이 발바닥을 덮을 만큼 쌓여있었어"라며 "바다일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바다에서 나올 건 없으니까 걱정이 많아"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보상이야기를 꺼내봤다. 아직 주민들 중 보상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론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가장 걱정이 많은 이들은 '맨손업자'들이다. 이들은 양식장 없이 '맨손'으로 자연산 굴이나 해산물들을 채취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주민들이다. 이들에게는 보상을 받을 근거나 자료가 없다. 반계리에서 멀리 이곳까지 작업을 나온 조연순(68세·여) 할머니도 맨손업자다. 종종 굴을 따러 이곳에 들렀다고 했다. 조할머니는 "양식장 근처는 업자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 피해 지역을 훼손하면 안되나 봐. 가까이 가면 소리 지르고 전화까지 와. 다시 오지 말라고"라고 말했다. 이어 조할머니는 "그 사람들은 아마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있을꺼야. 우리같은 사람들이 문제야. 보상받을 양식장도 없고 바다일도 막혔으니까. 이제 우리들은 끝났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글/ 윤경재 기자
사진/ 지해선·정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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