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2년 봄에 나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3개월 간의 미국 시찰을 마치시고 돌아오신 함석헌 선생님은 나의 아파트에서 여장을 풀고 계셨다.

바로 전 해인 1961년 5월 16일에 우리나라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장면 민주당 정권은 허물어지고 박정희 육군소장을 수반으로 하는 군사혁명정부가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다.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함 선생님의 글을 당시 『사상계』지 사장인 장준하 님은 폐간을 각오하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 대사관의 문정관인 그레고리 헨더슨 씨가 이 글을 번역해 미국 국무성에 보고한 것이 군사혁명정부를 높이 평가받게 하는 아이러니를 가져왔다. 이 정도의 글이 발표될 수 있는 언론 자유가 허용되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님은 국무성의 초청을 받게되었다.

당시 미국 워싱턴 DC의 교포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사람이 후에 미국 카톨릭 대학의 부총장직을 역임하게 되는 오기창 님이었다. 하루는 이 분이 찾아와서 함 선생님의 강연회를 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기창 님에게, 함 선생님으로부터 Politics의 P자도, 박정희의 P자도 들을 생각은 아예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했더니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함선생님의 강연이 열렸다. 백악관 옆에 있는 「YMCA」 강당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한국 교포들로 꽉 차 있었다. 나의 예언이 적중되었다고나 할까. 두 시간여의 동서를 꿰뚫는 선생님의 강연에서 정치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이 좋은 나라에 건너와 있는 여러분은 촌음을 아껴서 공부해야 할 것 아니냐라는 요지의 말씀으로 일관하고 계셨다. 이 모임이 있은 후 워싱톤 교민사회에서는 ‘사꾸라 함석헌’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국무성 한국과장과의 대화에서 한국 군사정부는 어떻냐는 질문에 “네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한마디뿐 더 이상의 언급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꾸라 함석헌’이라는 말은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3개월간 매일 퍼디엠 20불씩 지급된 약 2천불의 돈이 함 선생님의 세계일주 여행을 위한 비용의 전부였다. 퀘이커 모임과 대학의 초청 스케줄을 다 마치시고 1963년 4월경에 독일에 있는 안병무 박사에게 들러 북구 여러 나라를 돌아보신 다음 7월이 지나서야 인도로 향하게 될 것 같다는 1963년 2월 23일자 편지를 받았는데, 다시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모든 여정을 끊고 돌아 왔지요. 오니 역시 잘 왔다는 생각납니다…필요하면 싸워야지요…”라는 7월 11일자 편지를 받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후에 안병무 박사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하루 아침 한국에서 온 신문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시더니 조용하게 “나 돌아갈래” 한마디 남기고 귀국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사꾸라 함석헌’의 진면목은 이와 같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6·25 남북 싸움의 속 원인은 스탈린, 김일성, 루즈벨트에게 있지 않고 이성계에 있다. 이북을 상놈의 땅으로 금을 긋던 날 38선은 시작됐다”라고 한탄했을까. 이러한 외침의 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20여일간이나 옥고를 치루게 하는 당시의 자유당 정권이나, 외국인 관리 앞에서 내 나라 정부 비판하지 않았다 해서 ‘사꾸라’라고 비아냥거리던 워싱턴 교포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조 5백년을 ‘수난의 5백년’이라 했던 함석헌은 38선을 세계역사의 금이라고 불렀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적 숙제를 세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통일정신 독립정신 그리고 신앙정신이라 했다. 신라의 통일을 요절절(腰折節)이라 했고 이조 5백년을 중축(中軸)이 부러진 역사라고 외쳤던 그가 우리나라의 역사 전체를 고난의 역사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그 수난의 왕녀가 생산할 옥동자는 ‘우로 돌아 앞으로!’라는 역사의 명령에 세계의 향도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그려냈던 그의 역사 책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읽었던 추억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울린다.

팔십을 바라보는 서양사학자 노명식 교수는 함석헌 선생님의 글 27편을 골라서 매 편 마다 정성어린 해설을 붙인 『함석헌 다시읽기』라는 책을 엮어냈다.오늘의 새싹 젊은이들에게 함석헌의 씨정신이 이 역저를 통해서 메아리치기를 기대해본다.

김용준(명예교수·화학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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