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미래 환상인가, 전망인가
장밋빛 미래 환상인가, 전망인가
  • 이보람 기자
  • 승인 2008.03.14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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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라고 하기엔 미진한 미래학, 장기적인 분석과 전략이 필요한 때"

미래학(futures study)이란 과거를 추적해 그것을 토대로 미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미래학의 거목 존 나이스빗은 ‘기회를 찾는 사람들의 나라’로,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 시대에서 주도권을 쥘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미래학자들이 전망하는 한국의 미래는 국내 학계, 특히 경제학자들의 비관론과는 대조적이다. 미래학자들은 과연 어떤 근거와 논리로 한국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것일까?
지난 3일(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가 진행한 ‘IT기반 21세기 한국 메가트랜드 연구’에 참여한 본교 김문조(문과대 사회학과) 교수와 강홍렬(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를 만났다.

미래연구의 속성상 학계와 기업, 국가 삼자가 동떨어져서는 절름발이 연구밖에 안 된다. 이 셋이 맞물려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미래청’을 언급하는데 국가에서 기구만 덜컥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기 위해 대학과 기관에서 기본적인 미래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센터에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연구해야 한다.

미국, 프랑스 등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 전체가 중장기적으로 고민한다. 헌데 숭례문이 타고 원인 분석 보고서가 얼마 만에 나왔나. 한 달이 안 걸렸다. 심지어 미국 9? 11은 아직도 보고서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문제를 얼마나 단기적이고 말단적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 교육문제만 봐도 그렇다. 교육은 그 본질 자체가 미래 연구다. 그렇지만 5년 밖을 내다보고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 미래전략을 짜려면 적어도 10년은 내다봐야 한다. 헌데 이와 관련된 정책대안을 1,2년 만에 만들어서 어떻게 간극을 메울 수 있겠나. 미래연구와 관련된 논쟁이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미래학 붐’이 일고 있다

김문조(이하 김) 에고노믹스(egonomics)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상시적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면서 개인은 물론 조직체,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어 졌다. 국가는 물론이고 교육, 가족, 노동 등의 사회 각 영역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미래 담론이 적용되는 부분이 확장됐고 이에 미래학은 하나의 성장산업으로 거론된다. 얼마 전엔 기업의 디자인 팀이 사회학자인 나에게까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강홍렬(이하 강) 규범과 기본 질서까지 역동성을 띠는 오늘날,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원리는 ‘돈의 흐름’이다. 돈을 따라가는 마케팅이 미래연구를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래학은 어떤 학문이다’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데

‘미래학’이라고 하면 아카데미즘적으로 느껴지는데 사실 미래학은 기존 학문과는 거리가 있다. 학문은 분야를 나눠 접근하지만 미래학은 학문이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를 포괄한다. 또한 학문이라고 하면 예측 가능성, 즉 신뢰도가 높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지만 미래학의 미래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진 못한다. 결국 미래학은 기존 학문의 범주를 넘어서는 부분을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미래학을 미래연구라 지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미래연구는 정밀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틀릴 여지가 많다.

미래학을 미래연구라고 한다면 미래학자도 존재하지 않는가

미래연구의 대부분이 특정 이슈와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진다. 미래학이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소련이 붕괴되면서부터 였고 미래학의 초창기 연구자들은 정치학자였다. 같은 맥락으로 자원고갈의 경우를 본다면 에너지 학자들이 미래학자가 되는 것이다.

미래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과학적인 ‘예언자’다. 미래연구에서 연구자의 상상력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통찰과 전망에 대한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한다.

미래를 연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예측하는 델파인법, 다양한 해답을 구상하는 시나리오 기법, 계량적으로 접근하는 모델링, 시뮬레이션 기법, 이를 합친 멀티플레이어드법 등 다양한 방법론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트렌드 기법으로 흐르는 물의 방향과 속도를 추정하는 것과 같다. 물살엔 큰 물결과 작은 물결이 있는 것처럼 트렌드도 마찬가지다. 과거 미래연구는 큰 물결에 주목했지만 최근 들어 마이크로트렌드, 즉 작은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래연구는 객관적인 신뢰를 도출할 만한 공식이 없다. 따라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방법론으로 연구된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모두가 인정하는 전문가와 교수, 컨설턴트집단, 수치를 제시하거나 레토릭, 즉 미사여구를 쓴다. 참여정부의 ‘희망한국2030’처럼 강렬한 카피 한 줄을 제시하는 것이 레토릭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예다.

참여정부의 ‘희망한국2030’은 정부가 최초로 시도한 미래지향적 프로젝트였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가 ‘희망한국2030’을 제안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미래연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참여정부가 가장 많이 언급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구조를 보자. 성장은 경제구조이고 복지는 사회구조다. 경제가치가 사회로 투입되려면 예산만 투자하면 되지만 사회구조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려면 사회 자본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자는 쉽고 빠르지만 후자는 장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난다. 당장은 자원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순환구조는 장기적인 관점, 즉 미래연구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지만 참여정부는 순환구조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정부는 미래연구가 가장 필요한 집단이다. 논란이 많았던 고령화문제를 보자. 인구 정책은 길게 60년을 잡고 해야 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던 효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당시 제대로 된 추계가 있었다면 이렇게 소자녀, 고령화 사회가 됐겠나. 곡물 문제도 그렇다. 과거엔 쌀 아끼자고 분식 먹는 것을 권장했는데 이젠 밀가루 파동을 겪고 있다. 기본적인 식생활과 인구문제에서 단기적 전망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미래학자들이 IT강국인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한다

IT는 다른 어떤 기술보다도 사회적인 기술이다. 바꿔 말하면 IT산업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IT강국이고 미래를 선도할만한 능력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뿐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데이터가 없다.

동양의 순환적 사고에 기초한 기복적인 사회관도 문제다. 운명을 믿는 사람들에겐 미래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론 2조원이 넘는 점성 산업이 미래연구로 대체돼야 한다고 본다. 막연한 ‘점술’보다는 미래학이 의지할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나.

앞으로 우리나라 미래연구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나

미래연구의 속성상 학계와 기업, 국가 삼자가 동떨어져서는 절름발이 연구밖에 안 된다. 이 셋이 맞물려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미래청’을 언급하는데 국가에서 기구만 덜컥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기 위해 대학과 기관에서 기본적인 미래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센터에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연구해야 한다.

미국, 프랑스 등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 전체가 중장기적으로 고민한다. 헌데 숭례문이 타고 원인 분석 보고서가 얼마 만에 나왔나. 한 달이 안 걸렸다. 심지어 미국 9? 11은 아직도 보고서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문제를 얼마나 단기적이고 말단적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 교육문제만 봐도 그렇다. 교육은 그 본질 자체가 미래 연구다. 그렇지만 5년 밖을 내다보고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 미래전략을 짜려면 적어도 10년은 내다봐야 한다. 헌데 이와 관련된 정책대안을 1,2년 만에 만들어서 어떻게 간극을 메울 수 있겠나. 미래연구와 관련된 논쟁이 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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