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기 위해 시내의 한 대형서점을 찾은 A양. 신간 코너에서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신간소설 2권과 요즘 뜨고 잇다는 자기계발서 1권을 골라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 찍힌 가격은 42000원. A양은 예상보다 비싼 책값에 놀라 가격을 다시 확인하려 했으나 뒷줄의 손님들때문에 그냥 돈을 지불하고 서점을 걸어나왔다. A양이 구입한 책은 공교롭게도 모두 하드커버 북(hard-cover book)이었다.

서점에서 책 한권을 사기 위해선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교보문고가 선정한 3월 첫째 주 베스트셀러 20권 중 어학서적 3권을 제외한 17권의 평균정가는 1만340원이다.

교보문고 일본서적 담당직원 박소정(32세·여)씨는 “문고판(가로106×세로148mm의 A6에 해당하는 크기로, 종이 한 장으로 표지를 장정한 한손에 잡힐만한 크기의 책)이 대중적인 일본의 경우 한국 돈으로 약 5000원이면 책을 살 수 있다”며 “국내 서적은 대부분 반양장본(하드커버 북처럼 속장을 실로 엮는 방식은 동일하나 표지로 비교적 부드러운 종이를 사용하는 제본방식)으로 출간돼 책값이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한 학생이 시내의 어느 대형서점에서  가격표를 보며 책을 고르고 있다. (사진 = 지해선 기자)

 

△국내 서적에서 페이퍼백은 찾아보기 힘들어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국내 서점에서 저가의 책을 구매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내 출판사 대부분이 반양장본 혹은 하드커버 북(hard-cover book)으로 책을 출시하기 때문이다.

본지가 지난 10일(월) 교보문고의 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새로 나온 소설’ 코너에 전시된 도서 104권 중 3분의1 이상인 36권이 하드커버 북이었다. 나머지 68권은 모두 반양장본으로 페이퍼백(paperback, 하드커버와 달리 일반 종이표지에 속장도 중질지 이하의 용지를 사용한 싸고 가벼운 책)은 단 한권도 없었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티(Christy·29)씨는 “미국에선 같은 책도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두 형태로 출간된다”며 “미국 사람들은 종이 질이 떨어지더라도 가격이 저렴하고 가벼운 페이퍼백을 많이 구매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출판문화는 우리나라와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의 출판사는 하드커버로 책을 출간한 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동일한 책을 페이퍼백으로 발간한다. 하드커버 북보다 더 저렴한 값에 책을 보급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하드커버나 반양장본이 먼저 나온 뒤 문고판이 출간된다. 아예 처음부터 출판사가 문고판으로 책을 발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페이퍼백, 한국소비자엔 맞지 않아?
출판사들은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을 동시에 출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국내 소비자성향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출판사의 편집장은 “외국인들이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반면 국내소비자들은 디자인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며 “페이퍼백은 이런 한국 소비자의 성향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출판사의 제작부 직원 역시 “책 장식을 최소화 하고 싶지만 소비자가 소위 ‘있어보이는’ 책을 선호해 세련된 하드커버로 제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도서구매패턴을 조사한적 있는가’란 질문엔 두 곳 모두 “없다”고 답했다. 교보문고에서 만난 박은진(28세?여)씨는 “평소 책을 구매할 때 디자인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며 “질 좋은 종이와 하드커버를 사용한 책보다 재생지를 사용해 가볍고 가격 부담이 없는 페이퍼백이 많이 출간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 출판시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
국내 시장이 이같이 하드커버만 발행하는 배경엔 어려운 한국 출판시장의 사정이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미국·영국 출판시장의 경우 하드커버 북은 도서관과 관공서 등이 주로 찾고 있으며, 페이퍼백은 일반 독자들을 위한 보급판 개념”이라며 “공공시장의 성숙도가 낮은 국내의 경우 출판사는 하드커버 북을 일반시장에 높은 가격으로 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시장규모가 작은 국내 출판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각국에 출시된 ‘해리포터’ 책값을 직접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시장규모를 간과한 것”이라며 “발행부수와 판매규모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핸드북, 아직은 지켜볼 일
일률적인 출판문화 속에서 국내 출판업계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핸드북이다.  핸드북은 기존의 단행본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로 117×세로 174mm)로 줄이고, 가격을 원래 책값의 60%로 낮춰 판매하는 보급형 서적이다. 작년 9월부터 핸드북을 선보인 이마트의 담당 바이어는 “비싼 책값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휴대가 간편한 책을 선보이고자 기획하게 됐다”며 “책이 작아 재료가 덜 들고 유통구조를 단축시켜 제작비용이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핸드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유통업체가 핸드북을 독점상품의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책의 공공성을 해칠 것”이라며 “핸드북이 한국 출판시장에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답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 역시 “핸드북이 실용서와 베스트셀러 위주로 구성돼 아직까진 다양성 면에서 부족하다”며 “출판사들도 핸드북 열풍에 무조건 합류하겠다는 생각 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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