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갈통’에 대한 이야기 한 도막. 비속어로 전락해버린 이 단어는 원래 비어있는 대나무 줄기 또는 뿌리를 ‘갈통’이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속이 텅 비어 있어 대갈통은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대갈통은 나름 쓰임새가 많은 물건이다. 전통악기 해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이 대갈통이 필요하다. 단단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이 대갈통이 울림통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약재나 공예품 재료로도 꾸준히 쓰이고 있다.

난데 없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연히 대갈통의 유래를 듣고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얕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우리말처럼 여기고 쓰는 ‘가마니’가 일본어 가마스(かます)에서 유래한 것인 줄 잘 모른다. 우리에겐 본래 ‘섬’이라는 단위가 있었다. 그러나 올이 성긴 섬으로는 도정한 쌀을  담기 어려웠다. 수탈을 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은 섬보다 더 촘촘한 가마니를 들여와 보급하게 된 것이다. 섬에 비해 크기가 절반에 불과해 운반하기 쉬웠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단어들이 특수하다고 안심할 것은 못 된다. 요즘 아이들의 우리말 실력은 형편없다. ‘하루, 이틀’까지는 대체로 셀 수 있지만 ‘사흘, 나흘’ 대목에선 어느 것이 3일이고 4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까지 셀 수 있는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초등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 수준이 그렇다.

게다가 책 읽기 마저 싫어하는 경우가 많아 만화영화로 본 백설공주, 신데렐라의 결말은 알아도 춘향전의 결말이 어떤지는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클래식 악기는 눈에 익어도 양금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구운몽’에 나오는 퉁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아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기 위해 오늘도 학원가를 맴돈다. 며칠 전 사교육 시장에서도 유명한 안양 평촌 학원가를 거닐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초등부가 끝나는 시간인지 밤늦은 시간에도 대낮처럼 활기에 찬 학원가에서 아이들은 끼리끼리 몰려 서서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학원차를 기다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부러운 듯 자꾸 쳐다보며 2층 창가에서 데셍을 하는 어린 학생의 모습이 통유리너머로 환히 보였다. 무언가 근본을 잊은 채 아이들을 복제된 인형처럼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만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하나하나에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요즘 아이들은 수능을 잘 보려고, 특목고를 가려고, 각종 국어능력인증시험을 보기 위해 뜻도 모르는 우리말과 고사성어들을 ‘외워대고’ 있다. 우리말을 영어 단어 외우듯이 외우기만 한다고 그 안에 든 유산들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개그프로를 보며 웃고 말게 아니라 제대로 된 ‘쑥~대머리’ 한 대목 들어도 보고 사극에 종종 나오는 국악기 이름 정도는 알고 있기를, 그리고 가까워서 무관심한 우리 근대사에 애정을 갖고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

<雪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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