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측의 협조로 본교 캠퍼스에서 시각장애인체험을 실시했다. 본격적으로 체험을 시작하기 전, 김진성 복지사가 간단한 흰지팡이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손잡이 부분에 있는 줄을 손목에 거세요. 이제 지팡이를 잡은 손을 배꼽에 놓고 어깨넓이로 지팡이를 움직이며 바닥을 두드리면 됩니다”

첫 번째 코스는 실외농구장을 출발해 4.18기념관 앞 셔틀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라는 생각에 자신 있게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김 복지사의 지적이 이어졌다. “출발하기 전엔 꼭 손목에 줄부터 감아야 해요. 흰지팡이를 손에서 놓치면 시각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손잡이에 있는 줄을 손목에 단단히 매고 출발했지만 인도 턱과 쓰레기통 등 주변 사물과 종종 부딪쳤다. 손에 쥔 흰지팡이가 아니었다면 크게 넘어질 뻔한 위험한 순간이었다. 정류장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에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옆에서 김 복지사가 조언했다. “시각장애인에겐 시각을 제외한 모든 것이 지표가 됩니다. 지금 버스 시동소리가 들리죠? 소리를 지표 삼아 움직여 보세요” 방향을 틀어 손을 내밀자 그제야 딱딱하고 차가운 셔틀버스의 본체가 만져졌다. 농구장을 출발한 지 10분만이었다. 안대를 풀고 교내 셔틀버스 정류장 주변을 살펴봤다. 일반인을 위한 버스시간 안내도만이 있을 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안내도는 없었다.

비단 교내 셔틀버스뿐만이 아니다. 일반 버스 역시 시각장애인이 단독으로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버스노선 및 번호를 점자로 안내한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은 지하철이나 시각장애인 전용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복지사는 “지하철의 경우엔 점자안내가 붙어 있더라도 점자가 틀렸거나 거꾸로 붙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 역사에 신고만 해도 바꿀 수 있는데 말이죠”라고 말했다.

다음 코스는 과학도서관 옆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과학도서관까지 가는 것이었다. 과도관 입구까지 이어진 나무를 지표로 정하고 걸어가는 도중 또 무엇인가에 부딪혔다. 누군가가 과도관 입구에 세워둔 오토바이다. 김 복지사는 “인도 위 불법주차와 볼라드(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박아 놓은 것)는 시각장애인에게 최대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과도관에 도착, 도서검색 서비스를 받기 위해 안내창구를 찾았다. 아무런 지표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동행한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김 복지사는 “스스로 찾으라”고 주문했다. 안내창구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여기 누구 없나요?”라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좀 더 큰 목소리로 “안내창구는 어딘가요?”라고 물으니 왼편에서 “여기요”라는 아르바이트학생의 대답이 들린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도서관 장애인 도우미 프로그램을 지원받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정확한 절차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과도관 관계자는 “본교에 도우미 제도가 있긴 하지만 과도관의 경우 예산문제로 인해 운영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시 안대를 풀고 과도관 내부를 찬찬히 살펴봤다. 과도관 1층 입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지만 선형블록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점자블록은 ‘주의·경고’를 의미하고, 네 줄로 표시된 선형블록은 ‘방향안내 및 유도’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이 과도관 입구에 들어서게 될 경우 전방에 입구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 이후 이동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점자블록이 과도관 바닥 색과 유사한 색인 은색이라는 것 역시 문제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편의시설지원센터 홍현근 팀장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20만명 중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은 5만명 정도며, 이 외의 사람들은 일부 시력이 남아있는 약시”라며 “약시 장애인을 위해선 보색효과가 뛰어난 노란색 블록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과도관 내 계단 손잡이 역시 폭이 두꺼워 시각장애인이 안정감 있게 잡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잡았을 때 가장 안정감 있는 손잡이 두께는 지름 3cm다. 손잡이에는 기본적인 점자안내표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이번 체험에 동행한 김진성 복지사는 “고려대가 장애인시설부문에서 우수상을 탔다고 들었는데 실제 와서 보니 수준에 미달하는 시설들이 많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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