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3학년인 A양은 오늘도 아침 일찍 토익 학원에 가기 위해 새벽 일찍 길을 나선다. 토익 강의를 듣고 바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일주일에 3번, 공강 시간엔 한자 급수 시험 대비 특강을 듣고 저녁에 고등학생 영어 과외를 가야한다. 스케줄이 힘들기는 하지만 부모님에게 학원비 부담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 고교 영문법 문제집을 잠깐 훑는다. 요즘엔 제2외국어도 필수라고 하는데, 중국어학원을 다녀야할지 고민 중이다.

(사진 = 서애경 기자)
“대학의 비싼 등록금보다 학원 수업이 훨씬 효율적이고 도움이 된다”
본지의 설문에 참여한 한 학생의 답변이다. 본교생 265명을 대상으로 사교육 의존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4%가 대학생이 된 후에도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민혜리 연구조교수는 “취업이 어려운 요즘과 같은 때에 남들이 하는 걸 안하면 뒤쳐질 것 같다는 불안 심리가 대학생들을 사교육으로 이끌고 있다”며 “경쟁의식이 팽배한 사회의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학의 기초는 사교육
본교생의 대부분은 어학공부를 위해 사교육을 이용했다. 사교육을 통해 배운 분야는 영어가 71.3%로 가장 많았고 기타(15.4%), 제2외국어(12.6%), 한자(9.1%) 순이었다. 사교육을 받은 적 없는 122명 중 62%가 ‘향후 사교육을 받을 생각이 있다’고 답했으며, 받고 싶은 사교육 분야엔 역시 영어를 1순위(66.4%)로 꼽았다.

정재웅(문과대 사회02)씨는 “기업들이 영어 점수를 많이 신뢰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입사 지원 시 공인시험 점수는 필수”라며 “고득점의 영어 점수를 받아 둬야 안심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울 시내 유명 어학원인 ‘이익훈 어학원’ 측은 전체 수강생 중 70%가 대학생이며 토익, 토플 등 영어 시험 대비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영어영문학과와 언어학과를 제외한 국제어문학부 학생들은 원어강으로 진행되는 전공 수업을 위해 제2외국어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설하(문과대 노문06)씨는 “러시아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노문과에 입학했다”며 “학원을 다니면서 러시아어의 기초를 배웠다”고 말했다. 일어일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전공 수업에서 사용하는 일어의 수준이 어려워 어학연수를 떠난 친구도 있다”며 “학생들 사이에선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어학원이 필수라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최석무(사범대 영어교육과)교수는 “학생들이 어학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 공부하거나 학원을 다녀 기초 실력을 키운 후 대학교에선 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게 옳다”고 말했다.

자기주도 학습능력 필요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89.5%가 ‘혼자 공부하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사교육(34.3%)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23.1%)보다 효과적이었다고 답변했다. 이에 반해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학생의 42%는 ‘사교육 도움 없이도 스스로 공부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구지혜(사범대 영교07)씨는 “대학에 들어온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며 “학원과 같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관규(사범대 국어교육과)교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사교육에 의존하던 습관이 남아 대학 입학 후에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것 같다”며 “혼자서 사고하고 학습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사교육의 가장 큰 장점으로 ‘단기간에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운다(31.9%)’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꼽은 사교육의 가장 큰 단점은 ‘진정한 공부가 아닌 시험을 위한 기술만 배운다(34.1%)’는 것이었다.

대학에서도 이어지는 사교육비 부담
한국소비자원이 2007년 12월에 발표한 '국민소비행태 및 의식구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고등학생보다 사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생의 사교육비는 한 달 평균 36만 8300원으로 중 · 고등학생이 34만 1000원을 쓰는 것보다 높았다.

설문조사 결과 26.6%의 학생들이 사교육의 문제점으로 비용이 비싸다는 점을 꼽은 가운데,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본교생의 67.8%가 사교육비를 부모님이 해결한다고 답했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녀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사교육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본지가 본교생들의 주요 수입원을 조사한 결과 용돈(59.3%)과 과외(26.3%)가 상위를 차지했다. 초 · 중 · 고 사교육 시장의 공급자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다른 한편에선 사교육의 수요자를 겸하고 있다. 김윤민(문과대 불문07)씨는 "교환학생 준비를 위해 프랑스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며 "대학생이 돼서도 부모님께 학원비를 의존할 수 없어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교수는 “대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자신의 공부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이런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타인의 학습을 지원하는 사교육의 공급자가 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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