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 = Sports KU)
피겨 선수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가냘픈 체구, 뽀얀 피부에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요정의 모습. 최지은 선수를 만나기 전에는 피겨 선수는 말 그대로 은반 위의 요정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참살이길 어느 카페에서 만난 최지은 선수는 ‘요정’이 아니었다. 꾸미는 것 좋아하고, 친구와 수다 떨기 좋아하는 여느 여대생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홍명보나 선동렬처럼 축구, 야구 스타가 많았던 안암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새내기호랑이, 최지은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우리학교 오기 전에 성신여대를 다녔는데.
여대라 그런지 운동선수 선후배간 규율이랄까요 그런 게 엄청 엄격했어요. 귀걸이는 말도 안 되고, 심지어 앞머리도 못 내리게 했어요. 덕분에 학교에 매일 올빽하고 다녔었어요.(웃음) 머리카락 한 올도 삐져나오면 안 돼서 핀 200개를 꽂고 다녔죠. 명색이 여대생인데 치마도 못 입게 하고, 모자도 못 쓰게 했어요. 밥 먹다가도 선배가 지나가면 당장 일어나서 90도로 인사하는 건 기본이었구요. 그런 게 저랑은 잘 안 맞아서 학교를 많이 안 나갔어요.(웃음)

(실제로 최지은 선수는 최신 유행 단발펌에 매니큐어로 곱게 칠한 손톱, 귀여운 플랫슈즈까지 그야말로 패셔니스타였다)

그래서 우리학교에 온 게 더 좋겠어요? 싸이 제목이 고대 08학번 최지은이더라구요.
(웃음) 네, 고대 온 게 좋아요. 일단 남녀공학이라서 좋아요. 친구들은 네가 어떻게 고대 갔냐며 놀려요.

아직 3월이지만 혹시 대학에서 남자친구를 만들진 않았나요?
불행히도 아직.(웃음) 사실 피겨계가 남자친구 문제에 대해 예민해요. 만약에 제가 남자친구가 있는데, 대

(제공 = Sports KU)
회 성적이 안 좋잖아요? 그럼 소문이 이렇게 나요. “쟤 남자친구 사귀더니 저렇게 된 거야.” 저 같은 경우는 친한 오빠들이 많아서 싸이에 함께 찍은 사진도 올리고 그러는데, 그런 걸로도 수근거려요. 쟤는 왜 저렇게 남자가 많아 이런 식이죠.

이런 얘기는 의외네요. 피겨 선수로서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고충이 있을 것 같아요.
피겨는 워낙 감각으로 하는 운동이라 그 감각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수학여행, 졸업여행 이런 건 꿈도 못 꿨어요. 그렇게 2,3일 놀고 나면 감각이 엄청 떨어지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졸업앨범도 없어요. 졸업식에도 못 갔거든요. 다른 종목 선수들은 큰 대회를 치르고 나면 얼마간 쉬더라구요. 그런 게 정말 많이 부러워요. 또 살에 대한 압박도 많이 받아요. 조금만 살이 쪄도 이런 말 듣기 일쑤에요. “이렇게 살이 쪘는데 점프가 제대로 되겠니?”

피겨 선수들은 먹어도 절대 안 찌는 축복받은 체질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구요. 그런데 매일 운동을 하고, 체중관리를 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쉽게 살이 쪄요. 조금만 먹어도 바로 살로 가는 거죠. 먹은 걸 기록하는 건 기본이고, 그람까지 재어서 먹기도 해요. 제가 지금 녹차쉐이크를 시켰잖아요? 이거 다 먹으면 오늘 저녁은 못 먹는 거에요.(웃음) (김)연아랑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베스킨라빈스나 빵 cf 찍으면 정말 잘 할 거라고. 연예인들은 입 속에 넣었다가 도로 뱉어낸다는데, 우리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고. CF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니까 코치님도 아무 말 못할 테고 얼마나 좋겠냐구요.

하하, 재밌네요. 단 음식을 좋아하나봐요?
네, 엄청 좋아해요. 남들은 한두 개 정도 먹으면 달아서 못 먹는다는 크리스피 도넛을 6개까지 먹은 적도 있어요. 왜 이렇게 살찌는 것만 골라 좋아하는지.

아, 그런데 CF 찍지 않았나요?
송혜교가 스케이트 타고 나오는 핸드폰 광고가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 거기 송혜교 대역이 바로 저였어요. 예전에 교복 CF 촬영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비와 함께 CF를 찍을 뻔 했는데, 대회랑 겹쳐서 포기해야만 했어요. 지금도 아쉬워요, 비였는데.

쉬는 날이 많지 않으니까 그 시간이 더 소중할 것 같아요. 어때요?
네, 쉬는 날에는 친구 한 명만 만나기 아까워서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약속을 3개 잡아요. 엄청 바쁘죠.(웃음)

지은 선수가 워낙 바쁘다 보니까 서운해 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넌 항상 바쁜 척 한다고 그래요. 제가 한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와 찍은 사진을 싸이에 올렸는데, 다른 친구가 그걸 보고 너는 걔 만날 시간은 있고, 나 만날 시간은 없냐고 따진 일도 있어요.(웃음)

한창 노는 거 좋아할 나이인데, 많이 아쉽겠어요.
네, 저는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더 그래요. 외국으로 유학 가서 영어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코치님이 하루는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놀고 먹는 건 피겨 그만두고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이 젊은 나이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고, 그때 노는 건 이 꽃다운 나이에 노는 것만큼 의미 있지도 않을 거라고. 그런데 또 혼자 마음을 추슬렀어요.

이제 피겨 얘기를 해볼까요? 스케이트는 언제부터 타기 시작했나요?

(제공 = Sports KU)
제 고향이 대전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대전에 하나 밖에 없는 링크장에 놀러 갔다가 꽂힌 거예요.(웃음) 그러고 1년 후에 대전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저 혼자 서울로 올라왔어요.

초등학교 때 가족과 떨어져 살다보니 자립심이 절로 생겼겠어요?
네, 저는 지금도 뭐든지 혼자 하는 걸 좋아해요. 지금 당장 혼자 자취하라고 해도 정말 잘 할 자신 있어요! 그리고 제 별명이 ‘최여사’에요. 워낙 어른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에요.(웃음)

피겨 선수하면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랄 것 같아요. 어떤가요?
보통 그렇죠. 엄마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그래서 피겨 선수들이 사회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부족해요. 혼자 하는 운동이다 보니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많은 거죠. 그리고 링크장에서 연습만 하다 보니 바깥세상을 잘 몰라요.

어렸을 때 피겨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나요?
정말 많이 했어요.(웃음) 방문 잠그고 방 안에서 안 나온 적도 많아요. 코치님들이 욕을 많이 하셨어요. 신기한 게 욕도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아요. 처음엔 바보라고 하시더니 나중엔 병신, 그러다 ㄴ, ㅆ자 들어가는 욕까지 하셨어요.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스케이트 날집으로 손바닥을 하도 맞아서 한동안 젓가락질을 못한 적도 있어요.

피겨 선수들은 훈련도 예쁘게 받을 줄 알았는데, 놀랍네요. 어렸을 때부터 피겨를 하면서 지은 선수 못지않게 가족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오빠가 있는데, 저 때문에 오빠가 피해를 많이 봤어요. 제가 서울로 오면서 얼마 후에는 가족이 다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오빠만 학교 때문에 대전에 남아 있어야 했어요. 또 아빠가 오빠보다는 저를 더 챙겨주세요. 제가 운동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걸 아시니까 용돈이라도 두둑이 주시고, 필요한 거는 다 사주세요. 그런데 오빠한테는 저한테 하는 거에 비해 인색하세요. 저희 집은 다른 집들과 반대로 제가 쓰던 걸 오빠가 물려받아 쓰는 일이 많아요. 핸드폰, 디카 등등. 아빠가 지은이는 운동하느라고 이렇게 힘든데, 너는 고작 공부하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오빠를 나무란 적도 있어요. 지금은 다행히 오빠랑 스스럼없이 이런 얘기를 해요.

주니어 시절까지 김연아 선수하고 라이벌이었어요.
네. 주니어 때는 연아와 실력이 비슷했어요.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 하면 연아와 저였어요.

2003년에 올해의 피겨스케이팅 최우수선수로 뽑히기도 했고, 2005년 아시안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선 2위에 오르기도 했죠. 지금 와서 이런 말하면 의미 없지만, 부상만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일텐데 안타까워요.

지은 선수가 보기에 지금의 김연아 선수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 것 같나요?
다른 무엇보다 연아는 큰 부상이 없었어요. 언론에서는 연아가 아파서 대회에 출전 못할 정도라고 걱정을 하는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거예요. 그게 그렇게 큰 부상이 아니란 걸요.(웃음) 연아 어머니께서 연아 몸을 정말 잘 관리하세요. 연아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병원으로 데려가고, 아무리 중요한 대회라도 못 나가게 하시죠. 정말 잘 하시는 거예요. 보통 선수들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나가요. 당장의 스포트라이트에 욕심이 나서요. 저 또한 그랬구요.

김연아 선수랑 절친하다고 들었어요. 오히려 그 때문에 속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아와는 워낙 친해서 대놓고 말해요. “야 너 왜 이렇게 잘 타냐. 짜증나. 너 때문에 탈 맛이 안 나.”(웃음) 연아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 같아요.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동창생이 갑자기 연락해서는 “야 너 연아랑 친하다며? 연아 사인 받아줘. 연아 소개시켜줘.”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연아 팬분들이 연아 홈피에서 제 홈피로 파도타고 오셔서 “연아 이용해서 조회수 올리지 마라.”고 글을 써놓고 가기도 해요. 실제로 연아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제 홈피 조회수도 껑충 뛰어요.(웃음) 얼마 전에는 우리학교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냥 제가 먼저 말했어요. “김연아 아시죠? 저도 김연아처럼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요.”

김연아 선수가 월등히 잘 하는 데다 어린 선수들이 점점 치고 올라오는 기세인데 어때요?
저하고 동갑인 신예지 선수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대표선수에 떨어졌어요. 평소 신예지 선수와는 라이벌이라 쌤통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남일 같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서 기운이 날 것 같아요. 싸이에서 보니까 팬들의 사랑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팬들을 사로잡는 지은 선수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하, 그런 거 없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자랑 좀 해주세요.
그럼 말해볼까요?(웃음) 제가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는데, 그게 예쁘다고 많이 말해주세요. 또 제 목소리가 외모에 비해 굉장히 허스키한 편이에요. 방송에서는 거의 남자목소리처럼 나와요. 그런데 팬분들은 오히려 남자다운 목소리가 제 성격과 비슷하다면서 저의 매력이라고 말해주시죠.

그럼 피겨선수로서 자신의 장단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단점은 긴장을 많이 한다는 점이에요. 넓은 링크장에 홀로 섰을 때 긴장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숨이 두 세배로 차오르는 건 예삿일이에요. 오죽 했으면 링크장에서 땀이 다 나겠어요.(웃음) 남들 다 여유롭게 한다는 시범경기에서도 긴장을 하니 말 다 한 거죠. 반면 저의 장점은 유연성이 좋고, 표현력이 좋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보다 경험이 많으니 상황대처능력도 좋아요.

실례가 안 된다면 국가대표선수로서 수입이 얼만지 말해 줄 수 있나요?
국가대표선수라도 한 달에 백만 원 받는 게 다에요. 그걸로는 택도 없어요.(웃음) 의상비만 해도 족히 백만 원이 나가니까요. 옷 보면 반짝이는 게 다 스와로브스키에요. 싼 보석은 잘 반짝이지 않기 때문에 링크장에 섰을 때 안 예뻐요. 대회를 위해서 외국에 나갈 때도 코치님 비행기표부터 호텔, 밥값까지 선수가 다 부담해요. 제 상금을 차곡차곡 모아뒀었는데, 얼마 전에 엄마가 그걸 써버렸다면서 미안해하시더라구요. 제가 더 미안했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일차적 목표에요. 그리고 나중에는 코치가 돼서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싶어요.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경제적 문제도 있으니까요.(웃음)

잡지에 지은 선수가 표지모델로 나가면 남학우들의 관심이 장난 아닐 것 같아요. 그 분들을 위해 이상형을 밝혀 주신다면요.
제가 키가 작잖아요. 그래서 키 큰 남자가 좋더라구요. 여자는 자기가 작으면 키 큰 남자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동갑이나 연하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제가 고집이 좀 센 편이라 저를 다독거려줄 수 있는 오빠가 좋더라구요. 솔직히 말하면 돈 많고, 잘 생긴 남자도 좋아요.(웃음)

끝으로 우리학교 친구, 선후배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연아 때문에 저에게 다가오는 거라면 정중히 사양할게요.(어느 때보다 지은 선수의 표정이 단호해보였다) 피겨 선수가 아닌, 최지은으로서 우리학교에서 여러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제가 연아 만큼 잘 하진 않지만 열심히 할테니 응원 많이 해주세요! 고대 파이팅!^^

(제공 = Sports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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