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한 중앙광장 잔디밭에 누워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만감이 교차한다. 십여 명 남짓한 학생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돌아가면서 FM을 한다. ‘아, 나에게도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저들처럼 마냥 즐거울 때가 있었지.’ 잠시 입가에  엷은 미소가 스친다. 그리고는 새내기들만이 발산할 수 있는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기운을 부러워한다. 고개를 다른 한 편으로 돌려 두꺼운 전공책을 끼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슬퍼하고 거대 담론을 논하는 무리들을 본다. 허무할 정도로 빨리 흘러가버린 과거의 시간들과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수많은 걱정과 고민거리를 안고 한숨을 내쉬는 동기들, 선배들이 보인다. ‘아, 나도 멀지 않아 직면할 장래문제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겠군.’ 잠시나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나이나 학년과는 상관없이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은 한결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들은 자신의 열정을 한 곳으로 집중해서 쏟아 붓고 거기에 미쳐서(狂) 결국 미친(及) 사람들이다. 이들은 열정의 결과로 얻은  희열이 무엇인지를 몸소 체험했다. 그들은 매 순간 순간 현재에 충실하며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것을 믿는다. 그들은 삶을 통째로 바꿀 만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계 속에서, 우리 세대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언인지를 알아가고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얻는 다양한 종류의 경험과 배움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알고 있다. 

내가 무기력하거나 힘들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이들은, 내가 2년여 동안 몸 담았던 국제리더십학생단체(AIESEC)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AIESEC 고려대학교 지부 사람들과 AIESEC Korea에서 활동하고 있는 타 대학 학생들, 더 나아가서는 국제행사에서 만났던 전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활동 중인 해외 AIESECer들이다. 

지금의 나는 파릇파릇한 새내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발등에 ‘취업’ 이라는 불이 떨어진 취업준비생도 아니다. 무척이나 애매한(?) 3학년 휴학생이다. 비록 지금은 하릴없이 중앙광장 잔디밭에 누워 빈둥거리는 한량이지만 이제부터는 나도 좀 더 분주해져야겠다. 나를 꿈꾸게 하고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열정을 다 펼칠 수 있도록 해 준 AIESEC의 추억을 떠올린다. 남아 있는, 길지 않은 대학 생활동안 나는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나의 삶을 알차게 만들어 가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가 주체적으로 내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지만 가슴만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끼면서 엉덩이에 붙은 중앙광장 잔디를 털어내며 난 다시 일어선다.

(문과대 중어중문 06 손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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