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지해선 기자)
현재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과거 군부독재정권 하에서는 양당제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3金’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중심으로 경상, 전라, 충청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정당이 등장했다. 소위 ‘87년체제’로 불리는 지역정당 체제하에서 계급정당이 자리 잡기 힘들었다. 지난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2030세대’의 등장, 인터넷 정치의 활성화, 노동계급의 정당인 민노당의 의회 진입등과 같은 새로운 바람이 부는 듯 했지만 여전히 한국정치는 지역정당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계급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은 퇴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성숙하지 않았다.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론에 동의하는가
그렇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의회에 진출했던 ‘진보정당’의 경우 올해 총선에선 진보신당 0석, 민주노동당이 5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지난 2004년보다 후퇴했다. 

진보정당이 참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진보진영이 보수와 차별화된 공천과정을 통해 좋은 후보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하고 좋은 정책을 내 놓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바로 후보공천이다. 그런데 중도진보 정당이라 할 수 있는 통합민주당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에 공천을 일임하고 그 결정에 순응함으로써 정당으로서의 자율성, 대표성, 책임성을 포기하였다. 후보 공천 과정에서 국민의 요구와 의사가 투입되어야하는데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결정한 후보를 국민들은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고 결과는 통합민주당의 참패로 끝난 것이다.
 
4.9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5석이나마 정당의 명맥을 유지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강력한 계급정당으로 거듭나는 데엔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운동권의 고질적 분파주의(NL과 PD)에 갇혀 국민의 정서와 유리되었다는데 있다. 진보정당이 대변해야 할 유권자는 노동자, 농민,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인데 이들을 위한 민생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종북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만 치중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제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나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본다. 진보정당의 입지는 현 이명박 보수정부의 정책기조 및 방향에 따라 커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정책을 살펴보면 현 정부는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중도보수적인 ‘실용적’ 보수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보수에 가깝다. 정부의 정책기조가 점점 더 우편향적으로 치우칠 경우 자연히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에서 반대 지점에 있는 진보정당에게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진보정당이 자리잡기 위해선 비례대표제도의 확대가 있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10석과 이번 총선에서 5석을 확보한 것은 비례대표제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비례대표 명부 작성에서 민주적 선정과정이 있었느냐는 의문이다. 창조한국당은 비례대표 선정과정의 비리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통합민주당과 다른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리스트는 정치학교수인 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리스트를 가지고 국민들에게 정당투표를 던져달라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이다. 그래서 ‘비례대표제 무용론’이 나오고 있고 이는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진보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헤게모니(hegemony)를 잡고 있는 세력은 자본가다. 자본가들이 투자를 통해 국민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체제가 자본주의이다. 이러한 자본의 헤게모니를 대변하는 보수정당에 맛서 진보정당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계급편향주의에서 벗어나야한다. 순수한 노동계급 정당 만으로는 영원한 선거패배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보정당은 ‘대항 헤게모니’ (counter-hegemony) 전략을 구사해야한다. 정규직 노동자 뿐 아니라, 비정규직, 실업자, 농민,  환경운동, 인권운동, 여성, 반핵운동, 평화운동, 학생, 진보적 지식인의 거대한 대연합을 구성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진보정당은 ‘다중담론’을 지향해야한다. 하나의 노동계급담론이 특권적으로 진보정당의 담론을 주도해서는 안되며 다양한 담론들(multiple discourses)이 민주적으로 심의에 참여하고, 소통하고, 대화하여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실현가능한 대안적 정책을 개발하고, 철저한 보수정부와 정당의 비판에 기초하여 차별화된 좋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들의 가치관이 보수화된다는 관측이 있다
‘국민이 보수화 됐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총선실패를 국민에게 돌리려고 하는 변명일 뿐이다. 지난 10년간 선거결과를 분석해 보면 국민들의 정치성향은 보수 30%, 진보 30%, 중도 40%이다. 보수와 진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과거와 같이 투표하였고, 40%의 중도가 실용보수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은 ‘국민이 보수화 됐다’고 말하지 말고 유권자들의 마음에 드는 정책을 만들고 제시하여 중원에서 어디에 갈지를 몰라 방황하는 중도 유권자를 끌어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지난 참여정부의 진보·개혁적 성과를 평가한다면?
참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진보세력에 미친 악영향은 엄청나다.
참여정부를 두고 ‘좌측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갔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진보세력이라 자처했음에도 실제 정책은 보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말과 수사는 엄청나게 급진적이었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진보와 보수 어느 세력의 지지도 받을 수 없었다.  진보정권을 자처했던 노무현 정권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한국의 진보세력의  진보적 아젠다는 국민적 지지를 상실했다. 앞으로 진보정당이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앞으로 진보정당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가
진보정당은 내부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하여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편협한 계급 정당’에서 ‘내셔널 파퓰러(national popular: 국민-대중)’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진보정당은 ‘지식인’을 확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진보정당은 일반 노동자들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주도하였다. 지식인의 주도 하에 ‘실현가능한’ (feasible) 정책을 개발하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정당이 통치능력이 있는 수권정당("fit to govern") 된다. 이제 전투적 노동운동은 먹히지 않는다.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연봉 80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비정규직노동자, 청년 실업자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따라서 진보정당은 “보수정당과의 투쟁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 진보인지’에 관한 내부적 정체성 투쟁에 들어가야 한다.” 한국의 진보정당이 대기업 노조의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진보로 정의하고 이들의 정당을 지향한다면 한국의 진보정당은 영원한 소수파로 남을 것이고 영구적 선거패배를 맞이할 것이다. 만약 한국의 진보정당이 정규직 노동자, 농민, 비정규직, 실업자, 여성, 환경, 반핵, 평화, 인권운동, 학생, 진보적 지식인, 종교인 모두를 진보로 정의한다면 중원의 바다에 있는 중도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표로 조직하면 집권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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