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차 세계철학대회는 한국철학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부에선 아직 한국은 세계에 한국철학을 소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우려한다. 허남진(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철학계는 한국철학을 정립해 가는 과정에 있다”며 “실제적으로 한국철학보다 한국철학사 전공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되는 한국철학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학계에서조차 한국철학의 개념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채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철학의 범주는 근대화 이전의 철학에서부터 국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김형찬(문과대 철학과) 교수는 “5000년 역사 중 한국철학자로 불릴 사람은 20명 정도 뿐”이라며 “한국철학의 정체성 혼란에 관한 문제의식은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철학이 정체성을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서구문물을 통해 근대적 발전을 이룬 시대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씨?사상연구소 박재순 소장은 한국근현대 시대에 동?서문명이 융합하는 문명사적 상황과 변화를 담아내는 철학을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형찬 교수는 철학자들의 연구방법을 지적하며 “연구자들이 전시대에 대한 이해와 현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대의 한국철학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정통 한국철학을 넘어 현대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우리말로 철학하기’운동이 펼쳐진 바 있다. 외국에서 서양, 동양철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 지식을 기반으로 한국철학을 연구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태수(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철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선 동·서양의 철학을 함께 이해함과 동시에 우리의 삶과 연관된 방식으로 철학이 발전돼야 한다”고 말한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