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인포데믹스)도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지난 11일(금)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남긴 말이다. 일부 언론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촛불시위와 그 주요 동력인 인터넷을 겨냥한 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일(수) 한나라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한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임차식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네트워크 정책관이 “인터넷의 부정확한 정보로 야기되는 인포데믹스 문제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러스트=정서영)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인포데믹스는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을 합성한 신조어로, 정보의 확산에 의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와 부작용을 일컫는다. 추측과 가설들이 결합돼 만들어진 부정확한 정보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TV와 같은 IT미디어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가 경제, 정치, 안보, 인권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류독감(AI)에 대한 공포 확산은 인포데믹스의 대표적인 예다. 2004년 국내에 처음으로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당시 그 위험성에 대한 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 중엔 ‘사람이 닭이나 달걀을 먹으면 무조건 조류독감이 걸린다’는 식의 잘못된 소문들도 많았다. 이에 농가들은 언론을 통해 ‘닭을 75℃에서 5분만 열처리해 먹으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호소했지만 국민들의 공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많은 양계 농가와 관련 업체들이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 한편 지난 2005년 영국 런던 테러가 일어났을 당시엔,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인을 이라크에 파병한 우리나라가 테러 대상국이 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인포데믹스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유명인에 대한 악성 루머 역시 인포데믹스의 사례다. 탤런트 김태희 씨는 지난 2006년 ‘김태희가 재벌 2세와 결혼을 했다’는 루머를 퍼뜨린 네티즌 3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루머는 증권가에서 떠돌기 시작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김태희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젠 아니라고 대답하기에도 지쳤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유명인에 대한 루머의 확산은 해당 당사자들의 정신적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인권침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합리적 여론과의 모호한 경계
하지만 인포데믹스란 개념을 적용하는 범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최근의 조선·중앙·동아일보(이하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이 그런 경우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시작된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하게 확산되자 지난달 20일(금)엔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나서 “최근 인터넷 상의 유해요소,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와 기업에 대한 광고 중단 위협행위가 위험수위에 이르러 이를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많은 네티즌들은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근우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성루머로 인해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면 인포데믹스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팩트(fact)’가 있는 불매운동이라면 함부로 인포데믹스로 규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팩트(fact)’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포데믹스의 범위를 설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포데믹스와 합리적인 여론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데에는 학계의 연구부족이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한다. 인포데믹스란 개념은 지난 2007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지만 아직까진 인포데믹스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국내에선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승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경제 분야에서도 인포데믹스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바는 없다”고 전했다.

인포데믹스의 정치적 악용 우려도
인포데믹스의 개념이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인포데믹스라는 개념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촛불집회가 수그러들면서 이 대통령과 여권이 인포데믹스를 언급한 것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박 팀장은 “인포데믹스란 개념은 학문적인 것인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그 순수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본교 조대엽(사회학과) 교수 역시 “전염병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정치적 위험성이 있다”며 “인터넷 공론의 장이 활성화 되는 것을 부정적인 사회적 현상으로 규정한다면 자유로운 소통성, 개방성을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2일(화) 방통위는 유해정보의 확산 등으로 인해 국민 불안이 가중되는 문제를 최소화하겠다는 이유로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댓글 삭제 요청에 포털이 불응할 경우 포털을 처벌할 수 있다’는 법조항도 종합대책에 포함되면서 ‘정부가 포털을 압박해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속속 제기되고 있다.

조 교수는 “무조건 규제한다고 다 덮어지는 게 아니다”며 “네티즌들은 다른 방식의 여론 표출 경로를 찾아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다음이나 네이버에 규제를 가한다면 제도권 밖에 있는 다른 사이트에 공론이 형성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연구원 역시 “웹 2.0시대에 법에 근거한 일방적인 통제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정보 기득권자들이 정보를 감추지 말고 공개해 개방·참여·공유를 이끌어내는 것이 인포데믹스 창궐을 줄일 수 있는 진짜 대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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