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달 20일부터 30일까지 약 열흘간 인터넷 고대신문 쿠키(www.kunews.ac.kr)를 통해 △축구 △농구 △야구 총 3종목의 고려대 출신 역대 올스타를 선정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본지는 총 1300여명이 참여한 이번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각 종목별 역대 올스타를 선정하였다.

가드 이 충 희(경영학과 77학번)

국내선수로는 최초로 4천 득점(통산 4천4백12점)을 돌파했던 이충희는 ‘슛도사’로 불린다. 농구 대잔치에서 12시즌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고려대 재학시절 △진효준 △임정명 △황유하 같은 스타들과 함께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아마농구 49연승의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농구선수로서는 작은 180cm이지만 페이드 어웨이슛과 폭발적인 득점력은 그를 농구계 최강자로 만들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최강 중국을 꺾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86년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득점 2위에 오르며 한국선수로선 최초로 스페인 농구명문 레알 마드리드와 NBA 댈러스 매버릭스 등에서 공식적인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다. 대만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후 지도자의 길을 걷던 그는 작년 12월 대구오리온스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포인트가드 신 기 성(체육교육과 94학번) 

신기성은 좋은 공격력을 갖춘 포인트 가드다. 스피드가 뛰어난데다 50%에 육박하는 3점슛 성공률에서 알 수 있듯이 정확한 외각슛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 찬스를 이용해 승부처마다 터뜨리는 3점포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미들슛과 레이업 △돌파할 듯 하다가 갑자기 멈춰 던지는 미들슛은 그의 장기다. 그렇다고 공격력만 좋은 것도 아니다. 신기성은 정확한 패싱능력과 경기조율능력을 갖췄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련함이 더해져 최근 정인교 해설위원에게서 “기술적인 면에서 만개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좀처럼 기복이 없는 그의 꾸준함도 그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04/05 시즌 MVP를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부산KTF에서 활약중이다. 
          
포워드 현 주 엽(경영학과 94학번)
현주엽은 전희철과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장신 포워드다. 196cm 100kg의 거구에도 불구하고 발군의 순발력과 기동력을 가졌다. 포스트 업 시 턴어라운드에 이은 점프슛, 중장거리 슛에 능하고 뛰어난 패싱능력을 가진 그는 ‘포인트 포워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주희정과 함께 한국프로농구 최다(7회) 트리플더블 기록은 타고난 △득점력 △몸싸움 △리바운드 △볼배급 △어시스트 등 그의 다재다능함을 증명한다. ‘매직히포’라는 별명과 더불어 그에게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프로데뷔 이후 단 한번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현재 창원LG에서 활약중이다.


포워드 전 희 철(신문방송학과 92학번)

전성기 ‘에어본’으로 불렸던 그는 화려한 플레이와 고공덩크로 농구팬들을 사로잡았다. 전희철은 내?외곽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공격수’였고 국내 선수 중 실전에서 덩크슛을 가장 화려하게 구사한 선수로도 꼽힌다. 그는 198cm의 큰 신장에 가드와 함께 달릴 수 있는 스피드, 슈터 못지않은 3점슛 및 운동능력까지 겸비했다. 고려대 재학시절 △현주엽 △김병철 △신기성 △양희승으로 이어지는 ‘안암골 호랑이 5형제’를 이끌며 95년 국내 대학무대 전관왕, 95/96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전승우승 등 고려대 농구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지난 1997년에는 사우디 ABC(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에 28년만의 우승을 안기며 대회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그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해 SK 2군 감독 겸 전력분석 코치를 맡고 있다.

센터 박 한(행정학과 65학번)

인창고 2학년 당시 농구에 입문해 뒤늦게 코트에 데뷔한 박한은 당시로서는 큰 키인 192㎝ 신장을 이용하여 66년부터 70년까지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했다. 69년 ABC대회와 70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선수로 맹활약한 그는 1975년부터 고려대 농구부 감독을 맡기도 했다. 고려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박한 감독은 △김동광 △이충희 △임정명 등 걸출한 스타들을 길러내며 우리 농구부를 대학 최강으로 조련했다. 국내 지도자 중 최초로 500승을 돌파했고 49연승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97년 프로농구 출범 후 감독으로 수차례 러브콜을 받았으나 모두 고사하고 현재 대학농구연맹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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