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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 1990년, 짜릿한 역전승

1990년 고연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축구 경기였다. 우리학교는 △서정원 △홍명보 △노정윤 등 핵심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차출됐음에도 △미드필더 김병수 △포워드 김경호 △미드필더 전재영 △수비수 이임생 등으로 구성된 대학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며 손쉽게 승리를 따낼 것으로 예상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 하지만 경기는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전반 6분 문전수비 미숙으로 연세대 김정훈에게 손쉽게 선취점을 빼앗긴 축구부는 전반 30분 최태호에게 또다시 추가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전반 종료 5분 전, 이대로 전반을 마치면 경기를 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순간. 김연호 선수의 머리를 맞고 공이 연세대의 골네트를 갈랐다. 1:2 한 점차로 따라붙은 상황. 이대로라면 해볼 만해 보였다.

축구부는 후반전에도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나갔다. 후반 3분 문전으로 연결된 공을 다시 우리학교 한상렬 선수가 멋지게 헤딩슛으로 연결, 2:2동점을 만들었다. 동점이 되자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임근재(현 서울유나이티드 감독)를 비롯한 연세대 공격진이 우리 골문을 위협했고, 김봉수(현 전남 드레곤즈 코치)가 신들린 것 같은 선방으로 이를 저지했다. 이윽고 후반 33분, 김연호 선수의 슛이 상대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오자 이를 받은 미드필더 김병수 선수가 다시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켰다. 3:2 역전승. 선수와 경기를 지켜보던 고대인들의 함성이 잠실운동장을 뒤덮었고, 종합전적 3승 1무 1패로 고연전 승리를 확정지었다.

야구 : 1970년, 9회말 투아웃 동점포

‘이종도가 레프트 펜스를 훨씬 오버하는 장쾌한 홈런을 날리자 본부석 아래에 위치한 각 일간지 기자석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몇몇 병아리 기자님들이 9회 초 투 아웃이 되자 승부를 미리 예상하여 본사에 전화로 송고를 마쳤던 것. 데스크를 불러 정정송고를 하느라고 진땀을 흘리기 전에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라는 「일반상식」과 고연전은 믿을 수 없는 게임이라는 「고연전 상식」을 먼저 알았어야 되었을 걸’

-1970년 11월 3일자 고대신문 中

1970년 11월, 정기 고연전이 열린 장안 야구장은 우울했다. 2회 말 연세대 박노국 선수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이어 번트와 희생플라이로 1점을 빼앗긴 뒤 0대1로 경기를 마칠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고대인 모두가 우울했다. 적어도 8회 말 까지는 그랬다.

9회 초에 가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보였다. 앞선 2명의 타자는 모두 아웃됐고, 마지막으로 타석에 선 타자는 3타석 모두 삼진으로 물러난 1학년 이종도(체교과 70학번) 선수였다. 당일 부진한 모습에 그에게 기대를 거는 관중은 없었고, 연세대의 1:0승리로 기사를 송고한 기자들은 짐을 챙겨 본사로 돌아갈 준비에 바빴다. 모두가 패배를 직감한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종도 선수는 1-2상황에서 인커브로 들어온 공을 정확히 맞췄고, 공은 뻗어나가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솔로 홈런. 야구부가 동점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농구경기를 보려고 자리를 떴던 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응원을 펼쳤다. 결국 경기는 1대1 무승부로 끝났지만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아직도 당시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해 정기전은 극적인 무승부를 만든 야구부와 함께 축구, 아이스하키부가 각각 3:0, 9:4로 연세대를 대파했지만 종합전적 2승 1무 2패로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12년 뒤 동점홈런의 주인공 이종도는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은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전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농구 : 1995, 75:77 값진 패배

95년 2월 1일. 연세대와 고려대, 아니 전국이 들썩거리는 드라마 같은 명경기가 있었다.

바로 94-95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이미 93-94시즌에 내노라하는 실업팀을 모두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연세대와 이후 절치부심 1년만에 최강의 대학팀이 되어 돌아온 우리학교가 맡붙는 경기였다. 12승 전승의 연세대와 11승 1패의 고려대. 승자승 원칙에 따라 우리학교가 승리할 경우 정규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2위는 플레이오프에서 3위가 확정된 실업팀 최강 기아와 맡붙어야 했기 때문에 결승 진출과 우승을 좀 더 쉽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양팀 모두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경기였다.

당시 전력은 양팀 모두 가히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 △김택훈 등 조직력을 앞세운 연세대와 △신기성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등 ‘잡으면 달리는’ 기동력과 체력을 앞세운 우리학교의 경기는 당시 양 팀의 팬이 각각 100만에 육박할 정도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전 국민을 열광시켰다.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전은 시종일관 연세대의 페이스로 흘러갔다. 전반 초반 현주엽의 활약으로 앞서나갔지만 이내 서장훈과 우지원이 각각 17점씩 득점하며 39:48로 전반을 마쳤다.

다시 후반전, 우리학교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투지에 불탔다. 후반 신기성의 3점슛으로 시작해 △양희승 △신기성 △현주엽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연속 8득점으로 후반 10분 드디어 51:50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접전을 거듭하던 양교는 다시 연세대가 60:70 다시 10점차로 경기를 리드하며 승기를 굳혀가는 듯 했다. 다시 따라붙기 시작한 고려대는 66:74에서 1분여를 남긴 상황. 이상민이 부상으로 코트를 나섰고 우리학교는 전희철, 양희승의 연속 3득점과 우지원 등 상대 선수들의 연이은 자유투 실패로 종료 18초를 남기고 75:75 동점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연축했다. 그리고 연세대의 마지막 공격. 종료 4초를 남긴 리바운드 상황에서 양교 선수들이 몸을 부딪쳤고, 판정이 애매한 상황에서 주심은 연세대의 손을 들어줬다. 다시 연세대의 공격. 경기 재개 직전 연세대 최희암 감독은 서장훈에게 공을 연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시대로 공을 이어받은 서장훈은 그대로 몸을 돌려 터닝슛을 시도했고, 손을 떠난 공은 경기종료를 알리는 버저소리와 함께 골대를 통과했다. 75:77 연세대의 승리. 우리학교 선수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려야했지만 이를 통해 더욱 실력을 갈고 닦았고, 95-96년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전승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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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 2003, 역전 또 연전승

2003 정기 고연전 럭비경기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명경기가 연출됐다.

럭비부는 경기 시작 직후부터 종합전적에서의 열세(당시 전적 14승 3무 17패)를 만회하려는 듯 초반부터 강한 공격을 펼쳤다. 전반 1분, 우리학교 김근현(사범대 체교00) 선수가 페널티골을 성공시키며 3대 0으로 앞서나간 우리학교는 이후부터 연대의 공격에 밀려 주춤거리다가 순식간에 우린 진영을 파고든 연대 최재섭 선수를 막지 못해 전반 12분 트라이를 내주며 3:5로 역전 당했다. 전반 27분, 우리학교 김근현 선수가 페널티골을 성공시켜 6:5로 다시 역전에 성공했으나 3분 뒤 상대편 최영우 선수가 페널티골을 성공시켜 결국 6:8로 뒤진 채 전반을 마무리했다.

후반 들어 조직력을 가다듬은 우리학교는 16분과 18분 유민형(사범대 체교00)과 임대훈(사범대 체교01) 선수가 연속으로 트라이를 성공시키며 16:8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경기는 그대로 우리학교의 페이스로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후반 33분 기록한 트라이가 주심의 선언으로 무효가 되자 선수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선수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 연대 최영우 선수가 후반 35분 페널티킥, 후반 37분 트라이와 컨버션킥을 성공시켜 단숨에 스코어는 16:18로 패배위기에 몰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학교 선수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졌지만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윽고 전광판 시계도 멈춘 후반 로스타임. 우리학교는 종료직전 마지막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잠실벌이 숨을 죽인 그 순간 마지막 키커로 나선 김근현 선수의 슛이 그림같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3점을 획득. 최종 스코어 19:18의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잠실운동장이 떠나갈 것만 같은 뱃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선수들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김근현 선수는 경기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날아갈 것 같다”며 마지막 고연전 승리의 기쁨을 가득 만끽하기도 했다.

빙구 : 1987년, 3년만의 설욕전

1987년 9월 29일. 정기 고연전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태릉 실내 링크에서는 오랜만에 고대인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연세대를 5:4로 꺾고 지난 3년간의 패배를 설욕한 것. 이 해 정기전은 첫날 열린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종목이 모두 연세대를 꺾고 종합 전적 3승 2패로 승리했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우리학교 아이스하키부 선수들의 개인기와 체력의 열세, 4학년 부족으로 인한 경험미숙을 지적하며 연세대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고연전은 역시 고연전이었다. 1피리어드 시작 3분만에 연세대에 선취점을 허용한 아이스하키부는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5분 뒤 김희우가 골을 성공하며 1:1동점으로 1피리어드를 마쳤다.

2피리어드가 시작하자마자 역전골을 성공한 우리학교는 16분경 다시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이어 2분 뒤 다시 김관성의 골로 3:2, 1점을 앞서나갔다.

3피리어드가 시작하자 연세대는 압도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3피리어드 시작 3분만에 3:4, 두 골을 내리 허용하며 4연패의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선수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4분과 7분, 신호철과 신상철의 연이은 골로 최종스코어 5:4로 역전승해. 응원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날 승리의 주역은 양성철 골키퍼였다. 경기 50여초를 남기고 아이스하키부는 이동호와 신상철이 모두 마이너 페널티를 당해 수적 열세에 몰리는 위기를 맞았다. 연세대는 막판공세를 퍼부으며 여러 차례 우리의 골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양성철은 매번 몸을 날리는 선방으로 상대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고, 결국 3연패만에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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