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언종(문과대 한문학과)교수
<중국고대사회와 시경> 수업시간, 제목부터 답답해 보이나 학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전공도 아닌 교양수업인데 강의실은 70여명 학생들로 가득하다. 강단에는 김언종(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가 서 있다.

“찰 寒(한)을 살펴볼까? 갓머리는 집이야. 세로 세 줄과 가로 두 줄은 풀 더미이지. 그 밑의 여덟 八(팔)자처럼 벌어진 것은 사람 人(인)이고, 맨 밑의 두 점은 氷(얼음)이야. 집 밖에 얼음이 언 겨울에 추위를 이기려고 건초 더미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모양. 그래서 ‘찰 한’이지”

1995년부터 본교 한문학과에서 교편을 잡은 김 교수는 국내 한문학 분야의 석학이다. 한자나 고문해석 등과 관련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며, 작년 10월에는 제8회 국제한자회의에 참석해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한자를 통일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지난 학기에 교양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과 용산 광개토대왕비, 남한산성 삼전도비 등을 답사했고, 한문학과 전공자들의 일일호프와 강원도 MT에도 참여했다. MT에 참여했던 박영수(문과대 한문07)씨는 “교수님의 진정성에 감동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6년 전 김 교수는 안식년을 맞아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뉴욕에서 교포 2세들에게 한국의 얼을 심기 위해 분투하는 정신과 의사 김수곤 씨를 만나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베푼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무료 유학경전 강의다. 2003년 봄부터 본교 평생교육원(舊 사회교육원)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무료로 유학경전을 강의한다. 수강생은 대학 새내기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거쳐 지금은 주역을 읽고 있다.

이런 김 교수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문학에 소질이 있던 그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두어 번 짝사랑을 하다가 지쳐 하는 수 없이 학업에만 매진했다. 학부시절에 청명 임창순(任昌淳) 선생의 서숙에서 밤늦게 까지 한문을 배우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 후 청명선생이 소개한 저명한 시경학자 리천뚱(李辰冬) 선생을 찾아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교수는 “한문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은 정말 스승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학창시절을 살고 있다. 교단에 선 뒤에도 벽사 이우성(李佑成)선생의 실시학사를 찾아 공부 중인데 어느새 20년째다.

그가 받은 ‘스승복’도 돌려주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밤이면 대학원생과 모여 다산 정약용의 미발표 유고와 조선시대 선현들의 간찰을 공부한 지 5년이 넘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양원석(본교강사 · 한자학)씨는 “교수님이 바쁘신 와중에도 열의를 갖고 이끌어줘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 사회의 주역이 될 본교생들에게 ‘사회에 대한 의무’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제 몸, 제 가족만 생각하는 소인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알고 실천하는 대인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유학사상의 본령인 수기(修己), 치인(治人)과 일맥상통한다.

김 교수의 연구실에는 책이 수 천 권도 넘었다. 학생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을 묻자 그는 곧바로 <심산 김창숙 문존>을 뽑는다. “심산은 자신을 다스리고, 더 나아가 독립운동에 몸을 바쳐 독재에 항거한 참 인간의 표상”이라며 일독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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