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도시 국가 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을 보장하는 사회조건 속에서 역사를 자유로운 개인 정신의 산물로 인식됐던 서양은 동양에 비해 정사와 야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지난호 서양의 정사와 야사에 이어 동양 역사의 기술에는 어떠한 방법이 있으며 후대에 전해질 역사는 현재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현대의 야사는 어떻게 전해지는지도 알아본다.

 
정사(正史)는 “정확한 사실의 역사” “전설, 패사(稗史:이야기모양으로 꾸며 쓴 역사 기록)에 대하여 전통적인 역사 또는 체계에 의하여 서술된 역사”로 정의된다. 동양에서 제일 유명한 정사 책은 중국정사 이십오사(二十五史)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부터 중국 역대 25 왕조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동양의 모든 역사서술의 전범이 되어왔다. 따라서 정사를 “기전체에 의한 중국 역대의 역사”라고 정의하는 학자도 있다. 우리나라 정사로 대표적인 것은 실록(實錄)이다. 실록 외에 정부가 주도해 펴낸 관찬사서나 개인이 역사 서술체제에 맞추어 쓴 여러 사서들이 정사에 포함된다. 이외에 승정원일기나 고문서 등도 정사에 포함된다. 정사의 경우 자신이 견문한 내용을 일정한 서술체제에 맞추어 기록하기 때문에 사료적 신빙성이 높다. 그러나 실록의 예를 보면 사관(史官) 자신이 작성한 사초(史草)에 서명을 해야하는 사관실명제 때문에 왕실과 지배층에게 불리한 내용은 알아서 애매하게 처리하거나 삭제해 버리기도 하였다. 정사 또한 위정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곡필하는 수가 많이 있었던 것이다. 역사 논문을 작성할 때 엄밀한 사서(史書) 비판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사(野史)는 야담(野談)이라고도 하며 한 개인이 자기의 주견대로 적은 역사 이야기, 즉 사화(史話)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민간에서 사사로이 편찬한 역사”라 정의하는데, 국가에서 인정하는 “정사가 되지 못한 역사상의 이야기”는 모두 야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상고사 이야기가 실린 <환단고기>같은 고기류(古記類)에서부터 대동야승(大東野乘)이나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이르기까지 한국 야사의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다.

야사나 야담은 쓰는 사람의 주관이 움직이는 까닭에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쓰여진다. 야사에는 민간에 내려오는 항담(巷談)과 필부(匹夫)들 사이에 떠도는 가어(街語)까지 들어 있어서, 때로는 정서(情緖)가 넘치는 살아있는 역사가 될 수 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16세기 이래 사림세력에 의해 발전되어온 야사의 완성된 표본을 이루고 있다. 사화를 겪는 과정에서 사림세력은 후세에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는 의식 아래 개인적으로 일상에서 보고들은 바를 단순히 일기식으로 적기도 하였으며, 특정의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사항을 모아놓기도 하였다.

수록류(隨錄類)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개별적인 기록들은 사림의 정권 장악이 가능해지고 사림정치가 본격화하게 되는 선조대 이후 <해동야언>같은 통사 형식으로 등장한다. 이후 각 붕당(朋黨)의 정치적 입장을 노골적으로 변호하는 당론서가 계속 나왔으나, 역사 서술에서 필요한 체제와 서술방식 그리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修史)태도의 면에서 파당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야사를 인용하여 역사상을 구성할 경우 철저한 사료 비판과 검증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야사는 고대사 관련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두고 강단 사학자들은 20세기에 쓰여진 작품으로 사료적 가치가 없다고 본다. 한마디로 야사이며, 가짜 역사서인 위서(僞書)라는 것이다. 위서 주장의 근거는 책 내용이 19세기 이후에 성립된 대종교 교리서와 유사하고 ‘문화(Culture)’ 등 근대에 사용한 개념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재야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신화 세계가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환단고기>를 야사가 아닌 정사로 본 결과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사를 인용하든 야사를 인용하든 사료(史料)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고증이 있어야만 올바른 과거 역사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과거 역사를 복원하는 데는 믿을만한 정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야사를 보충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상을 복원하는 기본 방법임을 깨달아야 한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야사는 고기류(古記類)의 저술 외에 조선왕조 오백년으로 대변되는 여러 정치 이야기 등이 있다.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안방 마님들의 여인열전, 기생 이야기 등이 우리에게 역사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이야기들은 역사에 흥미를 갖게 하고 교훈을 얻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과거 조상들의 삶을 배워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의 방향을 설계하는데 있다고 했을 때, 야사도 정사 못지 않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근래 정치권 등에서 명백하지 않은 증거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 예가 많다. 이러한 불분명한 사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논쟁은 신문이나 국회 기록처 등에 문서로 남는다. 때문에 근현대 역사는 신문이나 공문서 등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요즈음 국가정보원의 ‘도청 의혹’ 사건을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이 각기 다른 일간지마다 초점을 달리하여 보도되고 있다. 만일 검찰의 조사에서 그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는다면 남은 의혹은 야사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제는 후세의 역사가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후세의 역사가가 신문이나 국회 및 각 당에서 남긴 기록을 가지고 그 진실을 정리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로 문서 자료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파당적 입장을 담은 야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일반 대학교나 많은 공공기관에서도 자신들의 활동을 문서로 남기고 있다. 정부나 대통령의 경우도 해마다 정부기록보존소 등에서 기록을 정리하고 있다. 최근 비판을 받고있는 검찰에서는 불공정한 인사 사실을 검찰 정사(正史)에 남긴다고 한다. 이것은 정식으로 체제를 갖추어 기록된 정사이기 때문에 나중에 역사가의 해석을 거쳐 우리 검찰의 역사를 돌아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남겨진 기록이 정사이든 야사이든 다양하고 풍부한 기록을 물려주는 것은 우리들이 후세에게 남겨주어야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을 포함해 많은 기관에서는 자신들의 활동이 떳떳치 못한 탓인지 많은 기록을 파기하고 남기지 않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말살하고 파괴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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