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월 ‘야간 통행 금지’ 가 해제된 이후 밤의 세계는 현재 ‘ 불야성의 시대’ 를 이룰 만큼 발달해 왔다.
24시간 응답자가 대기하고 있는 서비스 전화, 어느 시간대에나 전화로 주문할 수 있는 쇼핑몰. 24시간 형광등을 밝히는 편의점이 전국에 걸쳐 무려 5500여개에 달하는 ‘24시 사회’ 가 도래한 것이다.
이같은 24시간 시대에서 구성원들이 바뀐 생활 패턴으로  현대인들이 어떻게 24시간을 살아가는지 알아보고자 그들의 생활을 밀착 취재해 보았다.

 
<은행원 주부 김경희(38·가명)씨>
은행을 나서는 시각은 오후 6시 반.
김씨는 서둘러 시어머니와 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차를 몬다. 김씨는 그동안 시어머니 앞으로 미뤄놓았던  집안일을 오늘 할 생각이다. 집안일을 마무리 한 그녀는 아이를 재우고 퇴근해 돌아온 남편과 함께 시장을 보러 나왔다. “ 먹거리는 그때그때 사는데 주로 금요일 밤에 몰아서 사는 편이에요”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집 앞의 L마트는 그녀의 단골 쇼핑센터이다. 늦은 시각이면 반 가격이라고 떨이를 외치는 마트 점원들의 소리에 김씨의 눈빛과 발걸음이 바쁘다. 반찬거리 재료의 신선도가 낮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반찬으로 곧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트 관계자는 늦게까지 쇼핑을 하는 주부들을 고려해 식품의 신선도를 많이 신경 쓴다고 전한다.

남편과 쇼핑을 마친 김씨는 화장을 지우고 모자를 눌러쓴 뒤 남편과 차를 몰아 심야영화 극장으로 향한다. 이들 부부는 주 5일 근무덕택에 다음날 쉴 수 있다는 이유로 금요일 심야영화를 즐겨 보며 데이트를 한다. “심야영화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것 같아요. 예약을 해도 빨리 가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맡기 힘들죠.”

다음날 달콤한 휴일이 기다리고 있다며 들뜬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씨는 직장인, 어머니, 아내, 그리고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1인 4역을 하면서도 밤늦은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여가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택시기사 조현구(41·가명)씨>
‘ 수고’ 라는 짤막한 말을 건네며 퇴근하는 동료기사를 뒤로  조현구씨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퇴근 시간, 한창 바쁜 시간에 손님들이 서로 다퉈 택시를 부르는 손짓을 한다. 조씨는 교통체증이 심한 이 시간에 먼 곳으로 가는 손님을 태울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오랫동안 체증에 시달리면 돈도 그만큼 적게 번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앞서 이런 손님은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새벽 1시, 오후 6시부터 시작한 운전이 이제 슬슬 지쳐옴을 느낀다.
 “어서오세요, 어디까지 모실까요?” 손님을 태운 택시는 졸음을 떨쳐버리려는 듯이 영등포를 향해 신나게 달린다. 취객이 횡설수설을 늘어놓으며 가끔씩 운전하는 조씨의 머리를 뒤에서 탁탁 때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기분이 제일 나쁘다.

IMF로 인해 사업이 풀리지 않아 시작한 택시기사 일이 벌써 3년째 접어 들어간다. 초기에는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서두르며 아침과 저녁 두 끼만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갈수록 체력이 쇠해지는 것을 느껴 이제는 되도록 식사만이라도 여유 있게 하려고 애쓴다. 오랫동안 앉아만 있다 보니 운동이 절실하지만 그 시간에 택시를 운전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 택시를 멈추기가 어렵다. 불경기인지라 요즘은 손님이 적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한 손님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한다.

벌써 새벽 3시다. 이제 슬슬 퇴근할 시간이다. 밤참으로 라면을 먹은 그는 가족들이 잠든 집으로 향한다. 이 시간에 들어와 오후 늦도록 늘 잠에 취해 있을 수밖에 없는 그는 가족에게 늘 미안하다.
오늘도 이렇게 그의 하루는 끝남과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동대문 시장상인 임옥자(52·가명)씨>
오후 5시, 임옥자 씨에게는 지금이 아침과도 같다. 일어나 딸과 함께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친 임씨는 자신의 여성 정장복 가게가 있는 동대문 시장의 D 패션몰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저녁 8시에 가게의 문을 열면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 들러 옷을 사러 온 20~30대 여성들이 몰려든다. 조금 뒤 10시가 넘어서면 전국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발 딛을 틈도 없어질 것이다. 바빠질 때를 대비해 임씨는 옷가지를 이것저것 내놓으며 정리를 한다.
 
임씨가 동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시작한지 벌써 4년이 돼간다. 처음에는 이 생활이 적응 되지 않아 몸에 무리가 왔으며 이를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새벽 5시, 건강을 위해 퇴근하는 길에 임씨는 꼭 스포츠센터에 들러 수영
을 1시간씩 한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는 임씨는 아무런 불평 없이 집안일을 분담해서 도와주는 세 딸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아침을 함께 하는 것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의 전부이지만 이러한 생활에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그녀는 오늘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을 두고서 주경야독(晝耕夜讀)은 이제 옛말이 됐다. 현대인은 생체 리듬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생활에 맞추어 밤에도 일을 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의 인력을 원하고 있다. 시간의 틀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삶을 다스리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 ‘25시간’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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