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예술정보관. 이곳에선 예술활동과 관련된 각종 정보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해 우리 예술현장을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다. 아르코예술정보관은 국내 유일의 문화예술 전문 아카이브(archive, 특정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둔 정보창고)로, 국내외에서 발간된 문화예술 전문자료 23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사진=박지선 기자)

이곳에서 공연영상 제작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정영순(41)씨를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엔 ‘비디오 아키비스트(Video Archivist)’라는 직함이 적혀있었다. “비디오 아키비스트란 영상수집과 제작, 관리를 하는 사람이에요. 주로 방송국에서 쓰는 직함이지만 제가 하는 일도 방송국 비디오 아키비스트와 비슷해요. 공연을 영상으로 찍고 작품과 관련된 예술가의 인터뷰, 작품해설을 수록하고 편집해 ‘영상콘텐츠’로 남기는 것이죠” 정 씨는 작품 선정, 예술가 섭외, 관련공연조사 등 기획부터 수합된 자료 관리에 이르기까지 공연기록에 관련한 총체적 업무를 맡고 있다. 그녀는 공연예술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예술분야를 비평하거나 연구하는데 있어 기초학술자료이기 때문에 ‘영상콘텐츠’라는 말을 썼다고 덧붙였다.

예술인들은 일반적으로 ‘예술의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 비해 공연예술분야는 자료보관과 축적이 잘 되지 못하고 있다. 공연자체는 계속해서 이뤄지지만, 공연을 자료화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엔 소홀한 것이다. 정 씨는 “공연이 지나고 몇 년 후 그 당시 기록이 남아있는가 찾아보면 정작 공연 영상이나 자료가 전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공연당시 홍보를 위해 짤막한 영상을 준비하는 것이 전부죠. 남겨진다 해도 비디오테입에 녹화하는 정도고, 그 자료마저도 개인이 소장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라며 국내 공연예술 기록문화를 평가했다. 비디오테입의 경우 쉽게 훼손되고 잘 보관한다 해도 10년 정도면 휘발되곤 한다. 아르코예술정보관에선 이런 점을 보완하고 체계적으로 공연예술기록을 관리해주고자 공연을 녹화한 비디오테입을 가져오면 DVD로 변환해 돌려주고 사본은 이곳에서 안전하게 보관한다. 일종의 ‘예술은행’인 셈이다.

녹화자료를 기증받는 것 외에, 다양한 공연예술을 기록으로서 남기기 위해 직접 자체영상을 제작하는 것 또한 이곳의 주요역할이다. 이곳의 비디오 아키비스트들과 직원들에 의해 한 해에 제작되는 공연영상은 100여 개에 이른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아르코예술관의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3000여 편의 자체제작 영상이 보관되어 있으며, 자료를 기증받아 변환된 영상까지 합하면 5000여 편에 달한다. “사실 DVD로 변환해 보관하는 것도 완전한 것은 아니에요. DVD또한 훼손될 수 있죠. DVD로 자료실에 소장해 열람하는 것 외에 외장하드에 따로 보관하고 있어요. 그리고 영상기록과 자료들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우리 측도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하고자 해요. 아르코예술관이 ‘디지털 아카이브’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한편 정 씨는 저작권 또한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아르코예술관 측에선 ‘예술의 기록’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공연영상을 무료로 제작?보관해주지만 공연에 대한 사전노출이나 저작권침해를 우려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또한 저작권 문제뿐 아니라 대여시 자료의 훼손 정도가 심한 편이어서 아르코예술관은 공연자 측의 제공영상을 제외하곤 자체제작영상 대부분을 열람만 가능하게 해 두고, 대여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 정 씨는 “이용자들은 편하게 이용하고자 첨단서비스를 요구하지만, 이곳의 서비스규칙이 다소 까다로운 건 이용자와 권리자(공연주체)를 함께 만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제작된 영상콘텐츠가 공공재 차원에서 공유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무분별하게 유출됐을 경우 공연예술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정 씨에게선 기록인으로의 사명감과 공연예술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왔다. 또한 외국에 비해 지원이 열악한 국내 공연예술 기록문화를 개선하고자하는 열의도 엿보였다. 그녀는 공연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의 기록과 현장성 사이엔 딜레마가 존재해요. 같은 공연도 매번 다른데 특정 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그렇죠. 공연예술 기록자에겐 다방면의 사전조사와 합리적인 선택이 수반돼야합니다. 국내에선 영상제작에 예산도 부족하고 공연자들의 기록의식도 열악해 안타까워요. 외국에선 공연기록을 위해 무대조명까지 바꿔서 우수한 영상을 만들어내지만 국내에선 공연현장을 그대로 녹화하니 결과물이 미흡할 때도 많죠. 전 이런 부분을 개선시켜 지금의 공연을 나중에 영상으로 봤을 때도 손색이 없는 영상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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