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했던 혼돈, 카오스. 혼돈에 마침표를 찍고 ‘자연’이라는 질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신들이 필요했다. 카오스로부터 ‘닉스(Nyx 밤)’와 ‘에레보스(Erebos 어둠)’가 태어났다. ‘닉스’는 밤하늘의 맑은 어두움이고 ‘에레보스’는 땅속의 칠흑 같은 어두움이다. 이 둘은 서로 어울려 맑은 대기인 ‘에테르(Ether 창공)’와 ‘헤메라(Hemera 낮)를 낳았다. 카오스로부터 모든 천체가 운행할 우주의 드넓은 어둠과 낮과 밤의 세계가 생겨난 것이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20~150억 년 전.

 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다시 카오스와 이어진다. 카오스에 질서를 더하기 위해서 태어난 신이 바로 ‘가이아(Gaia)’ 땅의 여신이다. 땅은 우주의 토대일 뿐만은 아니다. 땅은 카오스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것을 낳아 기른다. 가이아는 우주의 어머니인 것이다. 숲, 산, 지하 동굴, 바다의 물결……. 이 모든 것들이 땅의 어머니인 가이아에게서 태어났다.

 처음 지구에 생명이 태어났을 시기에는 지구의 원시대기 속에는 산소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산소가 21퍼센트나 차지하고 있다. 지구 위의 바닷물 속에는 염분이 3.5퍼센트나 들어있다. 바닷물이 처음 생길 때부터 이렇게 염분이 높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구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가하면 기온은 수십 억 년 동안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지구의 변화는 누가 일으키고 조절하여 왔을까?

 여기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1970년대 초 영국의 대기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지구 역시 하나의 생명체이다’ 라는 것이다. 즉, 지구 생물권은 단순히 주변의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켜서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구의 환경를 활발하게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러브록의 이러한 이론을 ‘가이아 가설’이라고 한다.

 가이아 가설이 제일 먼저 주목한 점은 지난 30억 년 동안 공기의 원소 구성과 바다의 염분 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만약 지구 위에 생물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탄소, 질소, 인, 황, 규소와 같이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들이 땅과 바다를 오가는데 이를 옮기는 것은 생물이다.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구의 기온은 30℃ 정도 낮아졌고, 햇빛은 30퍼센트 정도 강해졌을 것이다. 생물들은 기후를 조절하고, 해안선을 바꾸며, 때로는 대륙을 이동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러브록은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진 커다란 복합체이며, 살아있는 존재라고 단정지었다. 이러한 지구의 실체를 그는 ‘가이아’라로 불렀다. 바로 그리스 신화의 땅의 여신을 말한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우선, 생물들이 주변의 환경을 자신의 생활에 적합하도록 조절할 수 있는가가 그 핵심이다. 과연 흰개미, 박테리아, 원숭이와 고래가 공동으로 협력하여 지구의 환경조건을 만들 계획을 세울 수 있는가? 과연 그들이 그렇게 똑똑한가? 많은 생물학자들은 이 동물들은 서로 협력한다기보다는 각자 자기가 살아갈 방법을 추구하다보니 때로는 서로 해치고 때로는 서로를 도와가며 그럭저럭 이 지구가 굴러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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