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
올 가을 대학을 졸업한 유 모(25)씨는 중학교 1학년 외환위기 당시 갑자기 작은 집으로 이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던 유 씨의 부모님이 대출금리 폭등으로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원래 살던 집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친구들에 비하면 그나마 덜 어려웠던 편이었지만 당시에는 좁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후 대학에 입학한 유 씨는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 재학 내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로부터 10년이 지난 2008년, 유 씨가 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유 씨는 “실패가 두려워 열심히 달려왔는데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더라”며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쳐 앞으로는 취업이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처받은 20대여, 너 떨고있니?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교수는 현 20대를 ‘트라우마 세대’라고 정의한다. 트라우마란 천재지변·대형사고·범죄피해 등을 겪은 뒤 나타나는 심한 신체적·정신적 외상을 의미한다. 트라우마 세대는 사춘기 시절 외환위기를 거치며 부모·친척의 실직 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최근엔 미국발 금융위기로 더욱 심해진 취업 대란에 마주해있다.

우석훈 교수가 명명한 ‘88만원 세대’는 노동시장에서의 위치라는 외적 규정에 근거한 명칭인 반면, 트라우마 세대는 20대의 집합적인 삶의 체험을 반영한 표현이다. 트라우마라는 수식어는 ‘외환위기’라는 주관적인 경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트라우마 세대는 어떤 특징을 띠고 있을까. 트라우마 세대 개념을 제시한 김호기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트라우마 세대는 민주화 이후 호황기에 20대를 맞은 ‘신세대’나 외환위기 극복기에 성장한 ‘2.0세대’와는 구분된다. 이들은 감성적으로 예민한 사춘기 시절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현실주의적, 물질주의적인 성향을 띤다. 미국 미시간대(The Univercity of Michigan)의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교수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현대사회는 점차 △자아실현 △환경보호 △양성평등 등 탈물질적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데, 신세대와 2.0세대 사이에 낀 트라우마 세대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트라우마 세대는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하다. 트라우마 세대의 부모는 대부분이 50년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로, 사람 수 자체가 많아 치열한 경쟁을 겪어온 세대이자 외환위기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다. 김 교수는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 역시 인구가 다른 세대에 비해 많기 때문에 신세대나 2.0세대에 비해 경쟁이 더 치열하다”며 “거기에 경쟁을 경험한 부모의 영향까지 더해져 더욱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6년 11월 기준 통계청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인구피라미드에 따르면 인구 곡선이 당시의 20~24세에서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에 대해 ‘베이비붐 세대의 영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적 배경의 영향으로 트라우마 세대는 청년실업을 구조화된 문제로 마주한 첫 세대가 됐다.

트라우마 세대의 현실주의적 성향과 경쟁적 상황은 그들의 취업열로 나타났다. 하지만 트라우마 세대가 사회진출기를 맞은 현 시점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함에 따라 이들은 두 번째 위기에 직면했다. 김호기 교수는 “다른 세대보다 취업을 위해 노력해온 20대 중반이 역설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며 “트라우마 세대는 불운한 세대”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2000년대 초 외환위기 극복기 때 성장한 2.0세대 역시 제2의 트라우마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2.0세대는 아직까지 트라우마가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트라우마 세대에 비해 자신감에 차있지만 이번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그들도 트라우마를 얻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라우마 세대의 밝은 미래를 위해
트라우마 세대의 불안은 원론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이 강화되면서 △대입 △취업 △승진 등 사회 각 측면에서 경쟁이 더욱 거세졌다. 트라우마 세대의 미래는 신자유주의의 완화 정도에 달려있다.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급격히 변화할지는 의문이다.

김호기 교수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처방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으로는 제18대 대선에 출마했던 문국현 후보의 ‘교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공약을 예로 들었다. 문 후보가 내세웠던 공약은 초과근로 축소에 기반한 추가 일자리 창출안으로, 사회적 타협을 통해 현재의 2조 2교대·3조 3교대 근무형태를 3조 3교대·4조 4교대 형태로 전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교수는 “트라우마 세대에 대한 책임이 사회에 있다”며 “지금의 20대를 두고 비정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기성세대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성공회대 경제학과)교수는 20대를 향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져라’고 말했다. 20대가 처해있는 구조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우 교수는 계간지 <문학동네> 주관 좌담회에서 ‘게임의 룰 자체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의 20대는 게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더불어 ‘주어진 조건에서의 최선’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일단 구조에 책임이 있지만 구조개선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자신이 처해있는 구조에 대한 성찰과 동시에 주어진 조건에서의 최대한의 자기계발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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