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대학은 가르치고, 공부하는 곳이다. 요즘 들어 ‘봉사’니 뭐니 하지만 대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봉사는 열심히 연구하고, 훌륭한 제자 키우는 일이다. 그러나 이 ‘기본’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의 교수들은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한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바쁘게 산다. 보직을 맡은 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평교수들도 각종 위원회나 사회단체 및 기업에 대한 자문 등으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렇게 신문에 글쓰는 일도 가끔 해야 하니 차분히 들어앉아 연구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 사회 분위기와 학교 문화의 변화에 따라 연구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연구비 수혜와 연구 실적에 대한 강조가 젊은 교수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교수들이 일주일 내내 저녁 사먹으며 밤늦게까지 논문 쓰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미국 교수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Publish or Perish”라는 표현이 이제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어찌되었든 공부하는 일이 중요시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연구에 대한 강조가 낳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우선 연구에 대한 평가가 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긴 호흡의 깊이 있는 논문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좋은 논문을 쓰기보다는 일단 많은 논문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단순한 생산성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학문의 특성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연구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가르치는 일이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교수들이 논문 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강의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연구가 주요, 강의는 종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미국의 명문 연구중심 대학들에서도 발견된다. 교수들이 연구비를 따기 위해 계획서를 쓰고, 받은 연구비로 연구를 진행시키고, 다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연구비를 신청하고…. 이런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다 보니 가르치는 일을 회피하는 결과까지 생기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도 이런 문화가 자리잡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교육부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과 경쟁력 담론 속에서 교수들은 연구에 대한 압박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연구 실적은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난다. 반면 강의는 열심히 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진정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참 교육은 단순한 비용-편익 분석으로는 잘 계산되지 않는다. 오늘 제대로 가르친 학생이 앞으로 어떤 인재로 사회적 기여를 하게 될 지 측정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가르치는 일을 가벼이 여긴다면 이것은 대학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은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다. 대학원생들은 한편으로는 배우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르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생들은 대학이라는 제도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 대학원생들이야말로 학문을 이끌어갈 후속세대이며, 대학의 앞날을 짊어질 동량이다. 요즘 대학원생들은 무척 바쁘다. 함께 세미나라도 하려면 시간을 맞추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바쁜 이유가 서글프다. 학교 공부뿐 아니라 먹고사는 일로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외를 하나쯤 해야 용돈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 부모 눈치 보기 미안해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스스로 해결하려면 과외와 학원 아르바이트가 오히려 주업이 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대학원생들은 취업이나 사회 진출의 유혹 속에서도 공부가 하고 싶어 진학했다. 대학원에 와서도 현실적 여건 때문에 허덕거려야 한다면 이는 잔인한 일이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대학의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들에 대한 장학제도는 극히 미흡하다. 행정조교나 연구조교 제도가 있지만, 그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갈 뿐이다. 성적과 가정형편 등을 고려해서 지급하는 일반장학금의 액수는 낯뜨거울 정도로 적어서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하루 빨리 대학원생들을 위한 파격적인 장학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에 대한 투자에 대학의 미래가 달려있다. 대학은 공부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교수나 학생이나 이 기본에 충실한 대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철규(문과대교수·환경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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