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골턴(Francis Galton)이 창시한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은 ‘부적자(unfit)’의 출산억제와 ‘적자(fit)’의 출산장려를 통해 인류라는 ‘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자는 학문이다. 진화론을 배경으로 등장한 우생학은 인간의 유전적 자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완전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유토피아적 기획으로 20세기 중반까지 각국의 △인구정책 △공중보건 △복지정책에 영향력을 미쳤다. 1933년 ‘유전병 자손 예방법’ 제정으로 약 40만 명이 강제불임수술의 피해를 입은 나치 독일의 경우가 우생학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예였다. 그러나 소위 ‘열등한’ 국민을 겨냥한 ‘단종법’은 독일에서만 실시된 것이 아니다. 1930년대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일본 등도 국민보건정책의 일환으로 단종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국가 차원의 우생정책은 파시즘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복지국가의 모델로 여겨져 왔던 스웨덴에서도 1950년대까지 정신장애자에게 반(半)강제적 불임수술을 실시했다는 사실은 복지국가의 이상 또한 우생학의 기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 준다.

우생학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의 우생학은 ‘민족개선학’, ‘인종개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진화론과 함께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은 실력양성론과 결합된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에서 민족 갱생과 인종 개조의 방법으로서 유전에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부터는 우생학을 주제로 한 대중강연이 유행하는데 이는 우생학이 민족적 육체개조운동의 논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민족육체개조운동은 △빈민 △범죄자 △아편쟁이 △유전병환자 등 내부의 ‘타자’를 열등한 자로 구획하고 건강의 부족을 조선민족 쇠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함으로써 체격 향상을 위해 △위생 △질병예방 △영양개선 △체육장려 등의 실천을 촉구했다. 뒤이어 1933년 △윤치호 △여운형 △주요한 △김성수 △이광수 등 85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계몽단체 ‘조선우생협회’의 결성은 이러한 우생학의 대중화 양상을 보여준다. 협회가 발행한 잡지 <우생>에는 △국제 우생운동에 대한 소개 △화류병의 위험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산아제한 △결혼과 출산에 관한 조언 등이 다뤄지고 있다. 조선우생협회는 강연회와 좌담회 개최, 아동보건과 결핵의학 상담 등을 주요 활동으로 삼았다. 또한 식민지 당국에 의한 폭력적 열성인자 제거 조처는 단종정책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한센병 보건정책에 의해 소록도에서 강제불임이 실시됐고, 1936년부터 남성 환자의 단종을 조건으로 결혼한 부부의 수는 1941년 840쌍에 이르렀다.

이렇듯 과거의 우생학이 강제성과 폭력성을 띠었다면, 현재의 우생학은 개인의 자발성에 그 특징이 있다. 오늘날 우생학의 현장은 유전질환자에 대한 강제불임수술이 아니라 장애태아의 선택적 중절로 이행하고 있다. 출생 전 태아진단기술의 발달을 배경으로 건강하고 우수한 자녀를 낳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이 ‘개인주의적 우생학’, ‘자발적 우생학’으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첨단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개인의 자발적 행위가 결국 ‘생명의 질’을 선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신장애 여성에 대한 강제불임이 행해지며,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등 생식보조 의료 기술의 활용이 보편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우생학은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다. 현실을 비판하는 감성의 날을 세우기 위해 우생학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노력이 절실하다.

염운옥(본교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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