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곽동혁 기자)
고향을 떠나왔지만 고향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가 남한으로 건너 온 지도 어느 새 10년. 그는 올해 본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에 입학한 새터민 오세혁 씨다. 개강 첫 주, 그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이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해야 하니 정신이 없네요. 이제는 책 좀 읽으려고요(웃음)”

지난달 25일(수) ‘반달이샵’ 쇼핑몰 사무실에 만난 그는 해맑은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 1999년에 북한 땅을 떠났다. “그 당시엔 떠나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었어요. 희망이 없었거든요”라고 말문을 열기 시작한 오세혁 씨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북한에서 장교를 양성하는 군사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냥 앉아서 죽느니 뭔가 찾아 떠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일단 중국으로 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중국에서 2년 6개월 간 체류하면서 매일같이 드나드는 공안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독일대사관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어렵게 한국에 도착한 그가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몇 년간 남한에 오기 위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공사판에 나가 막노동도 해보고 안 해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사회에서 필요한 인력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입학, 학업에 열중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부를 하면서 결국 제 고향인 북한이 떠오르더라고요. 여러 학문 중에서 사회학이 북한 사회와 인권을 연구하는데 가장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죠” 본교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주변 사람의 조언을 듣고 진학을 결정했다.

그의 지난 대학 생활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새터민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동기들과의 나이 차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혼자 자립해야 하니 항상 바빴어요. 그러니 친구들을 사귈 기회도 적었던 것 같아요” 남북 간 문화 차이와 나이 차에서 비롯되는 간극이 있었지만 다행히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는 탈북한 친구들 중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배우고자 하는 새터민 친구들을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중요해요. 새터민 학생들도 사람관계든 공부든 직접 부딪혀보기도 하면서 남한 친구들과 함께 섞이려는 의지가 필요하죠”  

4학년 1학기에는 휴학을 하고 여러 경험을 쌓고자 했다. 마침 탈북청소년 온라인 창업 프로그램이 있어 그를 포함한 5명이 함께 참가했다. 현재 그는 이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인터넷 쇼핑몰 ‘반달이샵’을 운영하는 중이다. 오세혁 씨는 “북한 반달곰을 지리산에 방사했는데 적응을 못해서 몇 마리 빼고 모두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반달곰이나 새터민이나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죠”

함께 창업한 동료 중 세 명은 올해 대학에 진학해 그와 또 다른 동료가 기획, 홍보 및 쇼핑몰 관리 등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 사장 역할을 대신하는 그는 이번에 새로 디자인한 옷을 보여주며 즐거워했다. 그는 쇼핑몰 사업 운영에 대해 “솔직히 이윤이 남는 사업은 아니에요.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고 어려운 점도 많지만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쇼핑몰 운영에서 멈추지 않고 반달이 캐릭터를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삼아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 사업으로 확대시킬 계획이다.

반달이샵 사장이자 한국청년정책연구원 그리고 탈북자 출신 대학생 모임 회장 역할까지 수행하며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는 본래 성격이 활달한 것은 아니라고 귀띔했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와 말투가 이를 대변했다. “원래 조용하게 지내는 걸 좋아해요. 게다가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외로워질 때도 많고요. 하지만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내 일만 잘하면서 사는 건 어리석고 이기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함께 더불어 살려는 마음을 가질 때 나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있다고 느껴 변하려고 노력했죠. 그러니까 정말 변하게 되던데요(웃음)”

그가 꿈꾸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그의 꿈은 UN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다. 오 씨는 “북한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학을 배우려는 것도 학문을 통해 북한의 민주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것이고요”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국제 사회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영어와 중국어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가슴에 두고 온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오세혁 씨, 10년 후에 변화해 있을 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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