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종영한 한 TV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골수이식에 대한 오해를 줄 만한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됐다. 주인공의 시어머니가 급성백혈병에 걸리고, 10년 만에 찾아온 생모도 만성백혈병으로 투병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의 골수가 두 사람의 골수와 모두 일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혈연지간이 아닌 타인과 골수가 일치할 확률은 0.004%에 불과하며, 형제지간의 경우에도 25%밖에 되지 않는다. 드라마 방영 이후 높아진 조혈모세포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백혈병 환우회가 ‘혈액 장애인 입법청원 운동’을 준비하고 있고, 국내 학계에서도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조혈모세포이식은 모든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인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를 이식해 혈액 관련 질환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과거에는 골수에서만 조혈모세포를 얻을 수 있어 ‘골수이식’이라 불렀으나 이후 말초혈액에서 조혈모세포를 얻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조혈모세포이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또한 탯줄혈액(제대혈)에도 조혈모세포가 많은 것이 확인돼 ‘제대혈조혈모세포이식’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1981년 처음 시작된 국내의 조혈모세포이식술은 이미 여러 차례 세계적인 성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울산대병원 외과 조홍래 교수와 권병석(울산대 생명과학부)교수팀은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뒤 환자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인 '이식편대숙주질환'의 치료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타인의 골수를 이식받은 뒤 공여자의 T세포가 이식환자의 장기를 공격하거나 이식환자에게서 자가면역이 유도돼 발생하는 질병이다. 그동안은 염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면역억제제가 유일한 치료방법이었다. 조․권 교수팀은 ‘CD137’이라는 공통자극분자를 강하게 자극하면 이식편대숙주질환을 일으키는 병인성 T세포가 죽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2월에는 2005년 미국 국립보건원(이하 NIH)에서 제시한 '만성이식편대숙주질환'의 진단기준을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조혈모이식센터 민창기·조병식 교수팀이 검증해 그 유용성을 밝혀냈다. 혈액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Leukemia(백혈병)>는 해당 결과에 대해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두 곳의 미국기관 연구와 비교해 볼 때, 최대규모의 환자를 포함해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낸 대표적인 연구’라고 평가했다.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부모자식 간 조혈모세포이식에도 성공했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이규형 교수팀은 31명의 환자에게 유전자형이 절반만 일치하는 부모와 자식 간에 골수를 이식하는 ‘반(半)일치 골수 이식법’을 적용한 결과, 수술 후 사망률이 13%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사망률이 20%에 달하는 형제 간 골수이식보다 낮은 수치다. ‘이식편대숙주반응’ 발생률도 30%로 형제간 이식수술(40%)보다 낮았다. 골수이식 전, 암세포에 오염된 골수에 항암제를 투여해 암세포를 죽이는 단계에서 항암제의 배합 및 투여 간격을 조절해 이식 후 면역 거부 가능성을 줄인 것이다.

현재 국내 학계는 치료법이 확립되지 않은 기타 난치성 질환을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치료하는 연구와 함께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연구, 성체줄기세포연구 등을 하고 있다.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회장 황태주(전남대 소아과학교실)교수는 “현재 국내 조혈모세포연구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견할 만큼 높은 수준”이라며 “조혈모세포이식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과 더불어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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