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이윤엽의 <여기 사람이 있다>(2009)
지난 1월 일어난 ‘용산참사 추모제’ 현장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의 문구다. 대형 걸개그림은 1980년대 시위현장에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최근 촛불집회 및 빈번한 시위로 현장예술가들에 의해 다시 길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들은 대부분 사회현상에 대한 저항, 폭로, 고발 등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미술은 1980년대 한국 사회 속에서 성장한 ‘민중미술’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민중미술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현실과 발언>, <두렁>, <임술년> 등의 미술가 단체 활동에서 시작됐다. 민중미술이 본격화 된 것은 1985년에 자치적으로 활동하던 화가단체들을 통합하는 ‘민족미술인협의회(이하 민미협)’가 결성되고  부터다. ‘민중미술’이라는 명칭 자체는 당시 정권에서 ‘민중을 선동하는 미술’이라 해서 붙인 이름인데, 이를 화가들이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당대의 ‘사회적 저항의식을 담은 미술’을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신학철 △임옥상 △최병수 △오윤 등이 있다. 이들은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시위현장에서 그림을 그렸고, 노동자와 농민 등 자본주의에 소외받는 계층의 삶을 그림에 담아냈다. 또한 사실기법을 통해 민중이 이해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당시 대표적 민중미술가였던 임옥상 씨는 “당시 미술은 대중과 소통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추상적이었다”며 “우리(민미협)는 미술을 통해 사회를 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중미술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등과 함께 했기 때문에 당시의 군사정권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민중미술은 훼손·파기되거나 사라진 작품이 부지기수였고, 그림을 그린 작가들도 당시에는 구속되거나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1987년 8월 민미협이 주최한 ‘통일미술전’에 전시된 신학철의 <모내기>는 공안당국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분류돼 압수당하고 작가는 구속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해당 그림이 북한을 이상향으로 그린 작품이라 해석했다. 이외에도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그린 전정호와 이상호 등 많은 화가들이 작품을 빼앗기고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민중미술은 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절정기를 누린 만큼 당시에 얻은 성과도 컸다. 미술평론가 최열 씨는 “민중미술은 미술이 전사회적으로 영역과 역할을 확대 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당시 천대받던 벽화와 출판미술 등에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일조했다”며 “가장 큰 성과는 미술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후 민중미술은 1990년대에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되면서 급격히 쇠퇴기를 맞았다. 특히 지난 199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미술계에서는 당시 ‘민중미술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다’라는 의견과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다’라는 의견으로 양분됐다. 윤범모(경원대 회화과)교수는 “정부에서 탄압했던 미술이 ‘관(官)’의 초대를 받아 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민중미술은 그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전시를 가졌다고 해서 죽을 성질의 것이 아니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 생명력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성완경(인하대 미술교육과)교수는 “<민중미술 15년>전은 졸속으로 마련된 부끄러운 전시였다”며 “당시 문민정부에서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베푼 정치적 상술에 민중미술이 이용당한 것으로, 해당 전시는 오히려 민중미술이 쇠퇴하는 계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임옥상 화백의 <우리시대의 풍경>(1989)
80년대 당시 시위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민중미술화가들은 90년대부터 대부분 전시장으로 복귀했다. 일부 화가들은 공공미술이나 현장미술로 주제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임옥상 씨와 최병수 씨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임옥상 씨는 1990년대부터 공공미술을 시작해 현재 서울숲 조각공원에 ‘무장애 놀이터’를 짓는 등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민중미술 쇠퇴이후 일정 화풍만을 요구하는 전시미술계에서 고뇌하다 대중과의 쌍방소통이 가능한 거리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임 씨는“공공미술은 사회통합에 문화예술이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데,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하다보니 대중들의 요구가 아닌 정부와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민중미술의 고전적인 계보를 잇고 있는 ‘포스트 민중미술가’들도 남아있다. 포스트민중미술은 △정치△여성 △인권 △이주노동자 등의 다양한 주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로 정치권력의 저항에 주목했던 1980년대의 민중미술과는 차이를 보이지만, 민중과 가까이서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박찬경 △조습 △노순택 등이 있다.

한편 지난 11일(수)부터 내일(31일)까지 진행되는 용산참사 게릴라 기획전 ‘망루전(亡淚戰)’을 통해서도 민중미술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예술가들이 직접 그린 작품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회는 △노순택 △전미영 △정윤희 등의 많은 민중미술작가들이 참여한다. 전시회를 기획한 경기도미술관 학예사 김종길 씨는 “철거민에 대한 정부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참사자를 추모하며 유가족들의 장례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모금의 취지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달 11일(수)부터 31일(화)까지 진행되는 망루전 1부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작가들에 의해 작업된 걸개그림이나 판화 등이 주로 전시된다. 4월로 기획된 2부에선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여성노동운동자 강주룡 씨가 고공농성을 했던 최초의 노동운동을 시작으로 노동운동 역사를 짚어보는 ‘망루 역사전’이 진행된다. 2부 전시엔 △이종구 △노순택 △정정엽 △배인석 △서해성 등 총 5명의 작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김종길 씨는 “화가들 이외에도 역사학자 한홍구 씨와 인물학자들이 참석해 망루의 역사에 대한 강연회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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