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 무대에 큰 걸개그림이 비스듬히 걸려있다. 민중미술가 최병수 씨가 그 위에서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그는 현재 여수 청소년수련관에서 자신의 1997년작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와 2006년작 <나무마음 우주마음>을 더 큰 규모로 옮겨 그리고 있다. 다음 달 20일(월)부터 25일(토)까지 열리는 ‘기후보호주간 행사’ 때 여수거리에 설치할 작품들이다.

그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중국집 배달부 △보일러공 △목수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목수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직업이 화가가 됐다. 지난 1986년 벽화를 그리던 친구들에게 사다리를 전해주러 갔다가 그림에 꽃 몇 송이를 그렸는데, 그 벽화가 불순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다 일어난 일이다. “경찰이 그림으로 잡혀왔으니 직업란에 화가라고 써야 된다는 거야. 그럴 수 없다고 실랑이 하다가 지쳐서 맘대로 하랬더니 화가라고 써넣더라고”

최병수,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년
그는 사람들에게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작품으로 많이 기억된다. 1987년도 6월항쟁 당시 그는 한 신문에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이한열 군의 사진을 봤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지. 처음엔 작은 천에 그림과 글씨를 새겨 시위 때 가슴에 부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학생들이 큰 그림으로 그리자고 제안해서 걸개그림을 제작하게 됐어”. 바닥에 놓고 그렸던 그림을 세우자 대형그림의 역동성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고 그 매력에 빠져 걸개그림 작업을 하게 됐다.

노동해방과 학생운동 현장에서 걸개그림을 그리던 그는 1988년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지난 1996년에 동해의 물높이가 4.8㎝ 올랐다는 기사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뒤 그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쓰레기들>, <펭귄이 녹고있다>, <잠기는 대륙> 등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특히 시커먼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지구를 그린 <쓰레기들>은 1992년 리우세계정상회의 때 요청을 받고 전시했는데 ‘타임’지에 소개돼 주목을 받았다. 또한 얼음 펭귄 조각을 이용한 <펭귄이 녹고 있다>는 지난 1997년부터 시작해 2013년까지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할 예정이다.

20년 넘게 그를 지켜봤다는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의 저자 김진송 씨는 "그가 향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이며, 다른 민중미술가들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김 씨의 말대로 최병수 씨는 환경 이외에도 △반전 △통일 △장애 등 수많은 보편적 가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전해왔다.

인터뷰가 끝나자 최병수 씨는 다시 붓을 잡으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 대학생들 취업 같은 개인적인 일에만 온통 관심이 있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사회와 소통해 다함께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지를 생각해야 돼. 세상이 사라지면 취직이고 돈이고 다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경쟁은 블랙홀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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