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터넷을 할 때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이하 IE)만 사용해야 한다? IE를 제외한 다른 웹브라우저로는 인터넷 뱅킹, 공인인증서 등을 사용할 수 없는 국내 인터넷의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IE 이외의 환경에서도 인터넷 뱅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웹표준운동 시민단체 오픈웹(openweb.or.kr)의 대표 김기창(법과대 법학과)교수다.

김 교수는 먼저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 인터넷의 이상은 ‘소프트웨어 제공자가 누구냐에 따라 정보가 제약돼선 안 된다’는 거예요. 정보가 소통되는 기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국에선 윈도우 운영체제에 IE가 포함돼 배포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사용해야 정보 접근과 전달이 가능한 상황이 지속됐어요” 그는 이런 상황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이용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기술편식현상으로 웹 기반 기술이 발전할 토양을 말살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게 돼요. 국가 안전 문제도 있어요. 특정 제품을 공략한 치명적인 악성 프로그램이 유포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전체의 정보기반이 흔들릴 위험이 높죠”

10년째 리눅스(Linux)를 쓰고 있는 김 교수는 영국에서 생활하다 지난 2003년 귀국한 이후 바뀐 인터넷 환경 때문에 큰 불편을 겪었다고 했다. “한국 홈페이지에선 공인인증서나 보안프로그램을 많이 요구해요. 그런데 그것들이 IE만 지원하는 액티브 엑스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홈페이지도 IE에 최적화돼 있어서 이를 사용하지 않는 저는 포털사이트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2006년 영국에 다시 돌아간 뒤 큰 결심을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매킨토시(Macintosh) 이용자 그룹’에 글을 올렸어요. 누군가 노력해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웹표준을 준수할 것을 법으로 강제하도록 한다면 결국은 납품하는 쪽의 기술 경향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선순환이 가능해지지 않겠냐는 내용의 글이었어요. 법률적인 면에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글은 큰 호응을 얻어 하룻밤 사이에 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후 관련 홈페이지가 개설되면서 운동이 본격화됐다.

그는 해당 논란이 ‘자유’의 문제와 결부된다고 강조했다. “누가 자유를 누리며, 누가 선택권을 갖고 힘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문제예요. 서비스 제공자가 선택하면 나머지는 전부 따라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나 각자의 선택과 자유는 존중받아야 돼요. 때문에 모든 것을 서비스 제공자가 가지고 있고, 이용자들은 따라야 하는 지금의 체제는 틀렸어요”

반면 그는 웹표준운동을 소수자 보호 차원에서 바라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보통 민주주의를 말할 때 ‘다수와 견해가 다른 소수자의 입장도 수용해라, 다수가 조금만 양보하라’고 하는데 웹표준 문제는 다수자가 양보할 필요가 없어요. 다수자의 효용이나 이용 편의가 전혀 줄어들지 않으면서 그동안 완벽하게 거부되던 소수자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다는 겁니다. 웹표준화 작업을 거치면 해당 웹페이지를 통해 앞으로 더 다양하고 확장 가능한 기술이 시도되고 구현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돼요”

3년간 계속해온 웹표준운동의 성과에 대해 그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했다.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공공서비스인 정부 웹페이지는 즉시 우리 주장을 수용했어요. 개선 일정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바꿔나가겠다는 답변을 받았죠. 소송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 결과 현재 모든 공공기관의 웹사이트는 어떤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더라도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라는 지침이 확립돼 있어요. 상징적 의미가 크죠”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도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융분야, 즉 온라인 뱅킹과 온라인 쇼핑이에요. 그런데 전자금융거래 문제는 전혀 진전이 없어서 소송을 했는데 두 번 졌죠(웃음)” 지난달 25일(수) 서울고등법원은 김 교수의 항소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연이은 패소에도 그는 소송 제기를 계속할까. “80년대 초 대학에서 법학을 배울 때 국가보안법 관련 판례들을 살펴보며 상당히 감명을 받았어요. 대법원에서 기각되고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상고를 하는 변호사들이 있었거든요. 완벽하게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전혀 그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정의의 회복을 시도하는 법률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제겐 큰 위안이었고 자부심의 근거가 됐죠. 제가 하는 일도 그런 시도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현 체제는 다른 대안을 용납하지 않는 억압적인 구조예요. 만약 상고를 한다면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겠죠”

일반 소비자들이 웹표준운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귀차니즘을 떨쳐라”고 말했다. “IE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웹브라우저를 쓰라고 권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예요” 파이어폭스(FireFox)나 사파리(Safari) 등 다른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당부했다. “어떤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페이지가 깨지거나 로그인이 안 되는 경우, 링크를 눌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 등 어려움이 있을 때 서비스 제공자에게 연락을 취해야 해요. 귀차니즘을 벗어나 불편함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행동하는 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역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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