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잔한 명문가를 한국학 연구의 세계적 총본산으로 다시 일으켜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열겠습니다.” 김정배 14대 고려대 총장이 2008년 5월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김정배, 이하 한중연) 원장으로 취임하며 밝힌 말이다. 오는 5월에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김 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한중연 취임사에 ‘쇠잔한 명문가’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쇠잔한 명문가’인 한중연 원장으로 부임하신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과 민족문화라는 수레의 두 바퀴가 필요합니다.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목표 하에 출범한 한중연이 박정희 대통령 사후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마치 ‘쇠잔한 명문가’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에 저는 국력에 버금가는 한국학을 재건하겠다는 생각으로 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오는 5월이면 취임 1주년을 맞이하십니다. 지난 1년간 한중연을 이끌며 역점을 둔 분야가 있는지요
우선 다소 방만한 행정조직을 정비했습니다. 외주를 주고 명퇴를 받으며 한중연을 가볍고 원활한 조직으로 개편했습니다. 더불어 시급한 과제인 한국학의 국제화를 위해 외국 대학원생을 초빙하고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한국학’에 대해 간단히 정의해줄 수 있으신지요
한국학을 협의로 말하면 문(文), 사(史), 철(哲)이 중심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문사철의 기반 위에 오늘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을 아우르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학은 사람을 만드는 인문학인 동시에 ‘한국’이란 국제브랜드를 창출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4.18’ 49주년입니다. 재임시절 <4월 혁명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특별 학술강연회를 개최하며 4.18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역사학도로서 4.18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본교 건학 정신에 △자유 △정의 △진리가 있습니다. 4.18은 그 건학 정신의 올바른 표출이며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입니다. 저는 1학년 때 4.18 의거에 참여하였으나, 그 후에는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4.18이란 신성한 정신에 누를 끼칠 것 같아 거리를 둔 것이죠. 4.18 정신은 앞으로도 면면히 계승되어야 합니다. 다만 체제를 뒤집는 행동에는 선봉장이었으나, 정치 세력의 중심에선 학생신분이라는 제약으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4.18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요
우선 4.18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합니다. 기존에 있던 자료에 새로운 내용을 보충하고 잘못된 내용은 바로 잡아 종합적인 책으로 출간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배들은 연륜이 있는 선배들의 경험담과 무용담을 경청해 4.18 사건을 이해하고 역사의식을 길러야 합니다.

본교 총장으로 재직하신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나라 전체가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당시 고려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금창출, 구조조정, 절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직접 발로 뛰며 2000억이 넘는 기금을 모금했고, 직원도 3년치 연봉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300여명을 줄였습니다. 또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2차 회식문화’ 등을 없애며 낭비를 줄였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원래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중앙광장과 지하주차장을 만드셨습니다. 오늘날은 다른 학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당시에는 반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 우리 학교엔 사람과 차가 뒤죽박죽이었어요. 연구와 학문은 질서가 바탕이 돼야 가능합니다. 안정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중앙광장과 지하주차장을 만들었고 화장실도 깨끗하게 개선했습니다. 너무 호화로운 것이 아니냐는 등의 반대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연구기반을 위한 사업이란 것을 이해하더군요.

최근 총학생회를 비롯한 일부 학생단체와 학교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언을 부탁합니다
순수하고 예민한 시기의 대학생들이 자기가 속한 학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학교와 학생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갈등이 산적해 있다면 풀기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고대정신’에 대한 학술행사가 열렸습니다. ‘고대정신’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고대정신은 ‘자신’과 ‘국가’를 모두 생각하는 정신입니다. 고대인들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국가에 공헌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삼일운동이나 4.18 의거 등은 역사 속의 고대정신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집무실에서 고대신문을 읽고 있는 김 원장 (사진=강승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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