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613호 고대신문에는 이중전공 신청과 관련해서 작년의 이중전공 지원 학과와 경쟁률에 대한 통계 자료가 기사와 함께 첨부되었다. 통계 자료에 나온 학과 중에서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학과가 있었기에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엔 높은 경쟁률을 보고서 풀이 죽었지만 다음에 지원자와 합격자 수를 통해 계산을 해 본 결과 일부 경쟁률이 잘못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이런 데서 고대신문이 실수를 해선 안 되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번의 수습일기와 이번 호의 ‘종단횡단’ 항목에 실린 글을 읽고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대신문을 읽고서 서로 다른 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기사를 싣는 기자들이 필요하다. 기자들이 기사를 싣기 위해 통계조사와 인터뷰를 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때로는 취재를 위해서 수업에 빠지기도 하며, 주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쉴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을 때, 그 노력의 결과물인 고대신문의 기사를 비판하는 것이 기자들의 노력에 비해서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닫는다. 하지만 이렇게 쉬운 비판마저 하지 않을 때 고대신문이 발전할 수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기자와 학생들에게 고대신문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고대신문을 비판하고 기자들은 이를 수렴하는가를 고민한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대의 기자들과 다른 학생들은 고대신문을 만들고 읽는다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주체만이 고대신문을 만들고 읽는 역할을 분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고대신문이 고대 내의 학생들이 소통하는 창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문을 만드는 데 소홀하거나 신문을 읽지 않는 것은 소통의 창을 닫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폐쇄적인 대학 문화를 답습하고 공고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소통의 창인 고대신문의 의미는 더욱 빛난다. 고대신문은 소통의 창이기에 우리는 고대신문을 만들고 읽는 것이다.

학생들이여, 고대신문을 읽자. 그 내용이 어떠하든, 고대신문을 읽자.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비판을 하자. 그리고 고대신문의 기자들이여, 고대신문을 읽지 않는 학생들도 있지만 매주 고대신문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신문을 읽지 않는 학생들이 아니라 읽으면서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자. 학생과 기자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고대의 ‘창’을 닫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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