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촛불집회로 민심이 뜨거울 때, 나는 SBS방송국에서 주말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었다. 주말엔 촛불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이 많아 내 업무는 대부분 촛불집회 영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하루는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제보자는 한 아주머니,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전경들이 유모차 향해서 소화기 뿌린 영상 보셨어요?” 그 아주머니는 그 영상이 지금 인터넷 노컷뉴스 영상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며, 꼭 공중파 뉴스에서도 그 영상을 틀어달라고 당부했다.

8시 뉴스가 임박해왔다. 다들 정신이 없었다. 그 때 경찰의 촛불집회 강경진압에 대한 기사를 쓰는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에 경찰이 진압과정에서 유모차를 향해 소화기를 분사했다는 내용을 썼는데 그 영상이 SBS촬영분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본사에서 촬영한 영상이 없으면 타사에 요청에서 영상을 쓴다. 그러나 이 날은 유난히 기사가 늦어지는 상황이었고 결국 데스킹을 맡고 있던 차장님은 ‘그냥 그 내용을 빼고 가자’고 하셨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때 당시 SBS는 ‘씨X새’라는 비난을 듣고 있었다. 분명했던 건 SBS기자 개개인들이 정부를 옹호하거나 권력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렇지만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런 작은 영상의 방송여부에 시청자들은 ‘씨X새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지금 고대신문사의 취재부 데스킹을 맡고 있다. 데스크로서 나는 반드시 모든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는 기사를 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신뢰를 만들고, 그냥 지나쳐버린 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여 불신과 미움을 낳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자 한다. 고대신문도 마찬가지니까. 지면의 기사 한 단락에 독자들이 우리를 마주할 수도 있고 우리에게 등을 보일 수도 있다.

학보사 데스크가 됐다는 소식에 알고지낸 한 언론사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언론사는 큰 칼이야. 큰 칼을 휘두를 때는 조심스럽게 휘둘러야 해” 조심스럽게, 항상 고민하는 작은 언론사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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