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자일리톨로 친숙한 나라 핀란드. 그 나라의 북부에 위치한 라피 주의 주도(州都)는 로바니에미라는 조그만 도시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산타클로스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는 ‘로바니에멘 팔로세우라’(RoPs)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위도에 연고지를 둔 프로축구팀이 있다. 핀란드 1부 리그인 베이카우스리가(Veikkausliiga)의 14개 팀 가운데 하나로, 사실 성적은 크게 좋지 못하다. 숨겨진 선수를 발굴해 타 구단이나 리그로 이적시키고 받는 이적료가 구단을 운영하는 주요 수입원이니, 해마다 2부로 강등을 염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이 생소한 도시의 이름마저 어려운 축구팀을 언급하는 까닭은 이곳의 주전 골키퍼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권정혁. 축구 명문인 부평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진학한 그는 한 때 청소년대표로 선발될 만큼 촉망받는 선수였다. 그러나 허리 부상으로 잠시 삐끗하더니, 일반인에게도 잘 찾아보기 힘든 기흉으로 인한 수술까지 받았다. 프로에 진출한 후 자리를 잡는 듯 보였지만(잠시나마 히딩크 사단에 합류하기도 했다), 상대편 공격수와의 충돌로 인한 무릎 부상으로 긴 재활을 거칠 수밖에 없었고, 핀란드에 가기 전에는 오래 지속된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8년 동안 옮겨 다닌 K리그의 팀은 다섯 곳, 실제 뛴 프로 경기수는 49경기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군복무 시절인 광주 상무에서의 22경기가 포함됐다. 전도유망한 어린 선수가 걸어온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은 통계치만으로도 그리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얼마 전 끝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아스날 전(戰)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의 결승 진출에 큰 공헌을 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그는 현 시대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박지성이 고교를 졸업할 당시 그를 원하는 대학은 없었다. 뒤늦게 테니스부의 ‘TO’(정원)를 빌린 명지대 김희태 감독 덕분에 어렵사리 진학했다. 그의 올림픽 대표팀 선발도, 명지대와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성공시킨 멋진 골 때문이라는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럽 진출 또한 히딩크라는 걸출한 매개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정혁과 박지성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인생의 길목에서 자리 잡고 때때로 찾아오는 ‘운’(運)이라는 요소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권정혁인들, 박지성만큼 노력하지 않았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해외진출 1호 골키퍼’라는 부담까지 안고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딘 그의 노력을 그저 그런 것이라고 누가 쉽게 폄하하겠는가. 이처럼 인생에는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그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는 듯 보인다.

또 다시 공채 시즌이다. 되면 좋겠지만, 이번에도 안됐다고 절망하지는 말자. 노력만으로 안되는 게 인생이다, 고 믿자. 물론, 열심히 노력했다면 말이다.

<世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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