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미술 가운데 ‘색채예술의 정수’라 함은 단청을 빼놓을 수 없다. 다종다양한 문양들이 형용색색 오채금장으로 장식되기 때문이다. ‘백의민족’이라 불릴 만큼 소박한 민족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화려한 채색예술을 구가했다는 것은 한민족의 또 다른 잠재력이라 하겠다.

인류가 조영한 건축미술은 다양하다. 역사상 건축양식의 뿌리는 △동아시아의 목조형태 △중앙․서아시아의 찰흙이나 벽돌로 만든 형태 △유럽․미국의 석조나 벽돌로 만든 형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표적인 전통양식들은 저마다 독특한 환경적 요인을 바탕으로 형성돼 각기 다른 특성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내․외부에 치장하는 장식의장을 들 수 있다. 유럽의 전통건축의장은 패턴과 부조장식이 대세였으며, 중앙․서아시아는 각양각색의 △벽돌 △보석 △돌 등으로 연속무늬를 치장했다. 또한 목조를 주재료로 한 동아시아의 의장은 금은채색으로 문양을 채화하는 단청이 대세였다.

목조건축에서 단청은 필수적이다. 인류의 ‘위대한 생산혁명 시대’라 불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움집형태의 원시건축이 조영되기 시작했다. 이후 원시가옥은 본격적인 목조건축으로 발달했는데, 목재를 가공․조립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봉착한 문제가 바로 건축물의 수명연장이었다.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건축재로 많이 사용된 소나무는 재질 특성상 △내강 △내구 △내곡성의 장점이 있지만 목재의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갈램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쉽게 썩고 갈라지며 왜곡되는 나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무언가 조치를 강구해야만 했다. 그 해결책이 바로 단청(칠)이었다. 그런데 건축부재에 채색하는 작업에도 인간 본성의 미의식이 발휘됐다. 내구성을 위해 부재에 칠을 하더라도 기왕이면 아름다움까지 고려해 각종 문양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행위로부터 건축단청이 시작됐다.

한국단청은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삼국사기> 옥사조에는 사회적 등급에 따라 단청의 규범을 제한하는 내용이 수록됐다. 즉, 당시 단청의 등급을 사회적 등급에 적용해 채색의 화려함을 제한한 것이다. 또한 오늘날에 전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당시 단청의 문채를 알 수 있는 실례가 다수 전한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단청예술의 꽃을 활짝 피웠다.

단청장엄은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 그 의장특색이 다르다. 종교적 장엄이나 왕권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 그에 상응한 문양을 선택적으로 장식했다. 우리나라의 단청양식은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건축물 성격에 따른 장엄특색의 상이성이 확연한 경우가 곧 궁궐단청과 사찰단청이다.

우리나라 궁궐의 단청양식은 웅건하면서도 정적인 인상의 의장특성을 보여준다. 권위와 부귀, 장수를 상징하는 길상들이 대부분인 왕실단청은 화사한 색상대비를 구사하면서도 은근한 품격이 베어난다. 국왕이 정사를 돌보는 가장 상징적이고도 웅장한 건물은 궁궐중심에 위치한 정전이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을 비롯한 조선시대 5대궁의 정전에는 국왕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문양들이 장식됐다. 왕실의 침전이나 편전, 배례전 등에는 부귀와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문양들이 간결하면서도 운치 있는 필치로 그려졌다. 궁궐의 정전 내부에는 용과 봉황이 주로 장식된다. 특히 임금이 자리하는 용상 위 천정에는 국왕의 숭고한 귄위를 표방하는 황룡이 풍부한 생동감으로 묘사됐다. 내부 우물천정에는 암수 한 쌍의 봉황이 수려하고도 근엄한 자태로 표현된다. 이밖에도 궁궐단청의 주요 문양으로는 △모란 △국화 △학 등을 들 수 있다. 꽃 중의 꽃 모란은 왕실의 부귀영화를 염원하며, 국화와 학은 나라님과 왕족의 무병장수를 위해 그려졌다.

사찰단청은 한국단청예술의 정수를 이어오는 중요한 보고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불교사찰 목조건물은 임진란 이후에 재건된 것으로 단청의 유구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 다종다양한 길상문이 총망라된 사찰단청은 개체의 조합과 각색으로 승화된 창의적 패턴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또한 안료의 발달과 더불어 오채금장의 대비와 조화가 마치 기라홍군의 자태를 보는 듯하다. 사찰단청의 의장특징은 불교 교리와 관련된 소재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종류를 다양하게 이용하는 것에 있다. 각종 화려한 꽃들과 △칠보 △길상 △서수 △서조무늬가 총망라되는 사찰단청에서도 주류는 연꽃, 보상화, 주화, 여의두, 금문, 용, 봉황, 칠보, 비단문양 등이다. 불교의 상징화인 연꽃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필수불가결한 장식요소다. 감꼭지에서 유래된 주화는 튼튼한 뿌리의 생장특성 때문에 기둥상부 주두에 장식됐다. 보상화는 불교의 이상화이자 화장장엄의 정수를 상징하기 때문에 일명 ‘만다라화’로 불린다.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여의무늬는 현세기복신앙의 표상이며, 칠보무늬는 서방극락세계의 장엄을 상징한다. 기둥에는 수려한 비단을 그림으로 그려 연화장세계의 지극장엄을 표방한다. 오늘에 전하는 우리나라 사찰단청의 대표적 양식은 19세기 이후에 정립된 금단청양식이다. 이는 중국, 일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창의적 채화장식으로 한국전통예술의 비잔틴식 정수로 거듭났다.

한국의 단청은 한말 이후 서양 건축문화의 유입과 외세의 작용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 추진된 전통문화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단청 복원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다시 부흥기를 맞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백의민족’이란 이미지 때문에 한국은 색채문화가 없는 색치(色癡)문화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한국 단청의 찬란한 색채 문화는 우리 민족의 한(恨)이라는 정서 밑에 도사리고 있는 열정과 분출의 욕망이자 가장 한국적임을 보여주는 시각적 디자인이다.

곽동해 동국대 교수·문화예술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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