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제2공학관
언제부턴가 제2공학관을 향한 사람들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캠퍼스 곳곳이 말끔히 단장되고 속속들이 최신형 건축물이 세워지는 지금, 반세기를 살아온 이 건물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이런 와중에도 제2공학관은 수많은 연구실과 실험실습실을 수용하며 꿋꿋이 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건물의 운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시설의 낙후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불평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한 것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공간부족의 문제다. 대폭 늘어난 공과대학의 구성원과 이미 비좁아져버린 캠퍼스를 생각한다면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 만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제2공학관의 보존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제일지 모르나 어쩔 수 없이 철거해야한다면, 이 건축물의 가치를 음미하고 그 역사를 기록해 우리가 오랜 시간 가꿔온
▲ 이공대학
기억을 보듬어두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제2공학관은 원래 의과대학 신설을 위해 착공된 건물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학교의 제반문제로 무산됐고, 일부 완공한 건물을 1964년부터 교양학부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이공대학 내에 신설된 공학부가 이 건물이 완공됨과 동시에 입주해 들어오면서 서로 다른 성격의 학부가 한 건물을 사용하게 됐다. 학교 측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해 인문사회계 쪽의 과학관(이후 교양관)을 사용하던 이학부와 교양학부가 자리를 맞바꾸도록 조치하면서 이 건물이 이공대학 본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30여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 테크노콤플렉스가 조성되며 이과대학과 공과대학은 각자의 건물을 갖게 됐고, 이 건물은 ‘제2공학관’이라 강등돼 명명된다.

▲ 과학관(이후 교양관)
또한 제2공학관은 자연계 캠퍼스의 역사를 묵직하게 간직함과 더불어 건축사적 관점에서 볼 때도 그 가치가 자못 작지 않으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조명이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듯싶다. 5층 철근콘크리트조로서 3773평의 면적을 가지고 준공된 이 건물은 애기능을 뒤로 감싸는 얕은 ‘ㄷ’자형태를 띠고 있으며, 중앙의 계단실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이다. 정면은 남남동을 향하며 남문과 조우하는데, 1983년에 완공된 과학도서관과 북문이 함께 엄격한 축적 구성을 이루어 자연계 캠퍼스에 근엄한 권위를 부여해왔다.

▲ 고대신문(1963년 9월 7일자)
여기에서 우리는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박동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길룡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은 제 1세대 건축가로 꼽히는 박동진 선생은 본관(1934)을 필두로 △도서관(1937) △서관(1955) △강당(1956) △여학생회관(1958) △교양관(1960) △박물관(1962) 등을 설계함으로써 고려대학교의 캠퍼스 스캐이프 형성에 튼실한 초석을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본관 등 초기 건물을 지배했던 석조고딕 모티브가 여학생회관에서 근대적 구조 및 공간개념과 교차하기 시작했고, 교양관과 제2공학관에 와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국내 최고의 민족사립학교라는 정체성과 강인한 독립에의 갈구가 대학 주요건물들에 육중한 석조건축을 차용케 했다면, 그 이외의 건물들에서는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근대교육을 받은 건축가에게는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교양관 입면의 격자 루버가 가진 규칙성과 리듬은 미국의 건축사가 H. R. 히치콕이 내세운 국제주의 양식의 한 특성이다. 교양관의 격자에 수평성 보다 수직성이 좀더 강조된 반면 제2공학관에서는 평활한 정면을 가로지르는 다섯줄의 수평 차양이 그 파사드를 결정 지우며 기능주의미학을 선보인다. 1970년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번째 사진은 이러한 모습을 적절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요컨대 제2공학관은 고려대학교에 현존하는 근대주의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
▲ 고대신문(1964년 3월 14일자)
나 어찌된 영문인지 1980년대 중반 이 건물의 정면이 암갈색 유리로 뒤덮이며 차양의 수평성이 무늬만으로 남게 됨으로써 원 창작자의 미감을 반감시켰다. 그리고 벽면과 유리의 사이 공간은 여름철 온실효과를 높임과 동시에 이따금 비둘기의 산란을 돕는 장소로 탈바꿈해 사용자로 하여금 비판의 꺼리를 하나 더 갖게 한다. 그 이후에는 조금씩의 리노베이션이 있었고 더 나은 학습 및 연구환경 제공을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이제 그 유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듯하다.

건축물은 집산의 기억을 담는 매개체다. 공과대학 45년을 거치며 제2공학관은 우리 고대인에게 땀과 웃음과 눈물과 아련한 추억을 선사했다. 우리가 경험해 온 ‘장소’는 결국 우리의 ‘존재’를 형성하는 것일 진데, 이러한 장소의 소멸은 우리 속 깊은 존재의 흐트러짐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단순한 노스탤지어의 추구가 아니라 끝없는 자아 갱신을 위한 실존적 근거에의 확인이다. 고로 새로운 장소의 조성과 소거에는 늘 신중을 기해야하는 것일 테다. 최첨단 과학 고대를 주창하며 쉴 새 없이 달음질하는 우리이지만,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한번 돌아보며 숨고르기 할 여유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나. 이것이 제2공학관을 위한 나의 변명(辨明)이다.

김현섭(본교 교수·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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