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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노란 리본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노희 기자
  • 승인 2009.05.30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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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르포
청명한 하늘과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이었다. 본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닷새째인 지난 27일(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봉하마을과 서울역, 덕수궁 분향소를 다녀왔다.

시골 간이역인 진영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 30분. 이른 시각이었지만 봉하마을로 향하는 조문객들로 셔틀버스 안은 가득 차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논길을 약 15분 간 달려 봉하마을 입구에 멈춰 섰다. 마을 안으로 진입하는 900m의 도로 양편에는 노랗고 검은 만장이 끝없이 줄지어 있었다. 마을에 다다르자 조문객들은 정성스레 방명록을 쓰고 오른쪽 가슴에 ‘謹弔’를 달았다. 그 뒤편에 임시분향소이자 노 전 대통령의 옛 사진, 의복 등을 전시해놓은 건물이 보였다. 건물 입구에 놓인 팻말에는 ‘조중동 기자와 KBS는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지만 이미 마을 안에는 KBS를 포함한 각 언론사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마을회관 옆에 차려진 분향소는 조촐했다. 열 명씩 들어서서 헌화와 묵념을 했다. 좁게 난 길을 따라 노 전 대통령의 생가(生家)를 찾았다. 길가에 늘어져 있는 노란 리본에는 노 대통령에게 전하는 조문객들의 글이 담겨 있었다. 생가는 경찰이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생가 바로 오른편엔 부엉이바위가 보였다. 부엉이바위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정치적 토론을 하기에 바빴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조문이 계속되는 가운데 분향소 근처에는 현 정부와 특정 언론을 규탄하는 전시물들이 진열돼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그 앞에 서서 전시물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자발적으로 봉사를 나왔다는 아주머니는 “노 전 대통령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십여 년 간 옆 마을에 살면서 순수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며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녀는 “조중동이든 아니든 많은 언론사들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 채 왜곡 보도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현재 모든 언론을 불신한다”고 말했다.

오후 두 시가 되자 마을로 이어지는 약 1km의 도로가 조문객들로 가득 찼다. 오전에는 열명씩 조문하던 것이 오십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누구하나 질서를 흩트리는 바 없이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조문객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쓰레기를 치우는 자원봉사자들과 상시 대기 중인 소방대원, 응급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간호사까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상황실에 자원해 온 신정아(여·29세)씨는 “노 전 대통령은 고향에 내려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오리쌀 농사, 화포천 살리기 등 여러 일을 했다”며 “새로운 대통령 상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깝다”고 말을 이었다.  

봉하마을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적이고 서민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여러 에피소드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왔다. 송은지(가톨릭대 생명공학04)씨는 “정치인 노무현보단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다”며 “자살은 검찰의 표적 수사에 대항해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낮에 이어 밤에 찾아간 곳은 서울역 분향소. 어두워질 무렵, 서울역에는 촛불을 손에 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서울역에 오르는 계단에 빽빽이 앉아 노 전 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보고 있었다. 조문을 위해 줄을 선 인파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노란 리본에는 ‘당신은 짐을 지고 가나요. 당신은 짐을 놓고 가나요. 편히 쉬소서’(박대탁 씨),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끝없는 몸부림!’(이인태 씨) 등 많은 이들의 아쉬움과 슬픔이 묻어났다. 저녁 10시가 지났지만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났고 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역사박물관과 시청을 거쳐 서울역 분향소에 왔다는 조수진(여·18세)씨는 “평소에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아 분향소를 찾게 됐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까지도 다들 한 번씩 와서 조문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던 최진혁(남·26세)씨는 “요즘 20대들이 취업 준비나 개인 생활에 바빠 정치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게 사실”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적 입장을 갖게 됐고, 앞으로 사회적으로 큰 사안이 터질 때마다 직접 나서서 참여할 생각”이라 말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덕수궁 분향소에 이르자 조문 인파로 인해 걷기조차 불가능했다. 덕수궁 앞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옆 돌담에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문구가 빼곡했다. 돌담길에 간간이 자리한 간이 분향소에서도 사람들의 조문은 끊이지 않았다. 길을 지나던 행인들은 ‘그래도 믿기지 않는다’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 옆에는 무장한 전경들이 일렬종대로 줄지어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봉하마을과 전국 곳곳의 분향소엔 삶과 죽음이 공존했다. 봉하마을로 자연스레 모여든 시민들과 봉하마을로 내려가지 못한 시민들이 촛불을 켜들었다. 지난 29일(금) 있었던 영결식을 제외하고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약 400만명 정도다. 각계각층의 고위인사부터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한 마음으로 추모했다. 이들 사이엔 권력도 이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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