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유지재단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소장=임영인 신부, 이하 다시서기센터)는 지난 2005년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 ‘성 프란시스 대학’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이후 매년 1년 단위로 강의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지난 3월부턴 24명의 노숙인들이 5기 수강생에 합격해 수업을 듣고 있다. “노숙인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다려주자”고 말하는 다시서기센터 소장 임영인 신부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클레멘트 코스의 국내 도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노숙인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우리도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가. 클레멘트 코스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클레멘트 코스 도입은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소위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상아탑 안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대중을 만나러 나와야 하지 않나. 원래 인문학의 출발은 저잣거리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데서 시작됐다.

국내 최초로 클레멘트 코스 도입을 계획하게 된 동기는
나는 빈곤계층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10년 이상을 일해 왔다. 그런데 항상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권리가 좀 더 보장됐고 경제적으로 나아졌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해진 것 같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해 봤는데 그건 바로 성찰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인문학밖에 없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도입 당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처음 시작할 때 어려운 점이 많았다. 노숙인과 인문학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이게 필요하긴 한데 과연 공부하러 올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빈곤계층을 만났던 경험으로 봐서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추산했던 게 아니라 경험으로 생각한 건데 그게 맞아떨어졌다.

다시서기센터는 기독교 단체지만, ‘성 프란시스 대학’에서 종교적 측면은 보이지 않는다
무료 급식 등이 노숙인을 존중해 주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노숙인은 대상화 돼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성찰의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숙인에게 가서 ‘자네는 성찰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종교가 필요해’라고 하면 ‘당신이나 하시오’ 이런 소리 나온다. 그것 또한 노숙인을 성찰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다. 사람을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신학도 인문학이다. 저 위에 있는 신이 누군지 고민하는 것이 신학이 아니라 그 분 앞에 있는 인간은 누구이며, 그 분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신학이다. 때문에 인문학을 하다 보면 신앙생활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고 본다.

처음 온 노숙인들은 어땠나
처음엔 술에 취해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진지해지고 자기 삶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들이 나타나면서 외모도 변하고, 결국 삶 자체가 바뀌어간다.
‘인문학 배우니까 노숙인들 바뀌던가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바뀔 것은 어차피 바뀌는 것이다. 흔히 인문학 공부를 마치면 '자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정부의 돈을 받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살아가는 게 자활이라면 역설적 의미에서 노숙인들 이야말로 자활을 해왔던 이들이다. 다급하게 묻기보다는 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즐기며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국내 클레멘트 코스의 현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궁극적으로는 노숙인만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파고들어야 한다. 처음엔 배려지만 나중엔 낙인화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파트 단지마다 한 쪽 구석에 빈곤계층 및 장애인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건 평수도 작다. 처음에 그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사회적으로 배려하는 차원의 것이 된다. 그러나 거기 들어가서 살기 시작하면 점차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낙오자가 사는 아파트가 되는 것이다. 진짜 배려라면 아파트 동 아무 곳에나 섞여 있어야 한다. 클레멘트 코스도 마찬가지다. 시작했으니 그 다음엔 섞여야 한다.
또한 노숙인 및 일반인들이 대학 강의실에서 실제로 인문학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럼 대학사회도 변할 것 같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인문학과’의 위기고 ‘인문학 교수님들’의 위기라면, 왜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들에게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나. 진정으로 인문학이 필요한 대상은 삶에 이리저리 치이며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이미 평생교육 사회다.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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