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금) 대법원이 삼성가의 경영권 편법승계 사건에 대해 사실상의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이 주주 배정이 분명하고 피고인들이 회사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를 유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에버랜드 CB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 허태학·박노빈 삼성 전 대표이사와 이건희 전 회장의 무죄도 확정됐다.

재계는 위축돼있던 삼성 경영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이를 앞 다퉈 축하하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에는 입을 앙다물던 재계가 이정도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무엇인지 몰라도 탄력을 받을 것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아무래도 뒷맛이 영 찜찜하다. 왜일까?
먼저 실질적 사실관계의 부재가 찜찜함의 가장 큰 이유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억지스런 형식논리만 들이대며 진실을 부정했다. 사건의 본질은 이건희 전 회장이 아들 재용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을 사용했다는 의혹, 즉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달랑 16억원의 세금만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대법원은 CB발행의 배정 형식만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여러 문제의 해결 방식도 석연치 않다. 1·2심 법원이 같은 쟁점인 에버랜드 사건 판결은 물론 기존 대법원 판례까지 부정하면서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번 판결을 앞두고선 담당 대법관이 교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번 판결이 의혹의 끝이 아니다. 삼성은 그동안 공언해온 깨끗한 경영구조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장 1년 전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발표한 ‘10대 경영 쇄신안’도 어느 정도 실천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의 편법과 탈세는 국민 모두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삼성이 ‘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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